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16)> 경종 영조 13 - 사도세자(6)

이찬조 2021. 5. 8. 20:12

<조선왕조실록(116)> 경종 영조 13 - 사도세자(6)

 

나경언의 고변이 있은 날부터 세자는 연일 엎드려 대죄하였으나 영조는 답이 없었고, 보름이 넘자 극도의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 아무래도 나를 살려두지 않을 모양이다.

 

세자는 “내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라며 칼을 뽑아 휘두르기도 하였고(누구를?), 그날 밤 여러 괴상한 비어가 삽시간에 궐 안에 퍼졌습니다.

 

영조의 분노와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며칠 뒤 영조는 건명문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새벽에 영의정과 우의정을 입궐케 했습니다.

 

신하들은 “요즘 세자께서 매우 뉘우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영조는 “말하지 마라, 말하지 마라. 여망(남은 희망)이 전혀 없다”면서 개탄했습니다

 

또한 영조는 신하들에게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 나경언이 어찌 역적이겠는가? 지금 조정 신하들의 치우친 논의 때문에 부당(父黨)ㆍ자당(子黨)이 생겼으니, 조정의 신하가 모두 역적이다.(이 발언은 임오화변의 근본적 원인이 정치적 문제에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로 거론되나 반드시 그리 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편 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임오화변이 있던 바로 그 날 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가 혜경궁 홍씨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 어젯밤 소문이 더욱 무서워 큰일이다.

- 내가 죽어서 모르면 모를까 살아 있으면 종사를 붙들어야 옳고 또 세손과 빈궁을 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영빈 이씨는 영조를 찾아 울며 아뢰었습니다.

 

- 세자의 병이 점점 깊어 바라는 것이 없사옵니다.

 

- 어미 된 정리로 차마 드리지 못할 말씀이오나 성궁을 보호하고 세손을 건져 종사를 편안히 하는 일이 옳으니 대처분을 하시옵소서.

 

- 다만 다 세자의 병이니 병을 어찌 책망하겠나이까. 처분은 하시되 은혜를 끼쳐 세손 모자를 편안히 하시옵소서.

 

1762년(영조 38년) 5월 13일, 영조는 선원전에 나아가 절을 올리고 세자를 불러 휘령전으로 나선 후 문을 4-5겹으로 막고 총관 등으로 하여금 궁의 담쪽으로 칼을 뽑아들게 하더니 다음과 같이 소리쳤습니다.

 

- 세자는 관을 벗고 맨발로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라.

-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노라!

 

세손이 알고 뛰어 와 울며 용서를 구했지만, 그 외 입시한 3정승, 승지 등 그 누구도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