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27)> 정조 8- 정조의 한계, 시대의 한계(1)

이찬조 2021. 5. 13. 21:34

<조선왕조실록(127)> 정조 8- 정조의 한계, 시대의 한계(1)

 

근래 정조는 소설, 사극 등에서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이런 인상이 깊이 심어졌습니다.

- 비운의 개혁군주

- 정순왕후와 벽파에게 고난당하다 끝내 독살당하고 말았구나.

- 독살당하지 않고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얘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선 정순왕후나 벽파가 정조의 사도세자 추승과 탕평정책 등에 반대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정조는 이들을 사생을 걸고 싸울 정적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설득해서 끌고 갈 정치 파트너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제압을 해버렸을 것이고, 실제로 제압할 능력과 힘이 정조에게 있었습니다. 벽파의 정책 반대는 어디까지나 정조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의 반대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정조가 병을 얻어 죽을 때까지의 과정 역시 정조실록에 상세히 묘사되고 있는데, 유사한 병으로 죽은 여느 왕들처럼 정조의 병세는 죽음으로 이어질 만큼 충분히 심각했습니다.

 

정조는 25세에 즉위하여 25년을 보위에 있었습니다. 뜻을 펴기에는 절대로 부족하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25년이나 재위하면서 펴지 못한 정조의 개혁구상이 무엇인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정조가 재위했던 1776년부터 1800년까지 25년, 이 기간에 영국에서는 세계사의 대격변을 몰고 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승리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한편 중국은 건륭제의 시대로 60년 재위 동안 사회는 안정됐고 수도 북경에는 서양이 상인과 선교사들로 넘쳐났습니다.

 

이러한 청나라조차도 시대의 변화에 뒤쳐져 있었음이 불과 수십 년 후 드러나게 되는데, 조선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청을 오랑캐라 깔보며 여전히 명나라 연호를 쓰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던 조선의 유학자들에게도 세계의 변화가 감지되었으나, 조정 실권을 장악한 이들에게 변화와 개혁은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아비의 죽음과 세손 시절을 견뎌냈고, 즉위하자마자 척신들을 과감히 처리한 데서 보이듯 정조는 엄혹한 시대를 감당할 만큼 강하고 결단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조는 검소하고 성실했으며 몸가짐이 반듯했습니다. 그는 평생 공부를 하고 무예를 닦으며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대격변의 이 시대에 조선 군주, 정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