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125)> 정조 6- 정조의 분신 홍국영(1)
정조는 해마다 12월 3일이 되면 즉위를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들을 불러 위로 모임을 가졌는데 이름하여 동덕회입니다.
주요 멤버는 영조 시대에 정조를 위해 총대를 메고 상소를 올렸던 서명선, 정조의 사부 김종수 등이었지만, 최고 중의 최고는 홍국영이었습니다.
조선의 영조,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사극에서 짧지만 크게 활약한 인물로 늘 등장하는 인물, 그가 바로 홍국영입니다.
정조에게 홍국영은 마음이 통하는 벗이자 최고의 참모였고 믿음직한 경호실장이었습니다.
홍국영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눈치가 빠르며 수완이 좋아 임기응변에 능했고, 글재주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성격이 호방하여 술과 친구들을 좋아했고, 장기와 같은 잡기와 시조, 창에도 능했기 때문에 집안 어른들이 그를 질책할 때가 많았고, 명문가에서는 홍국영과 교류하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홍국영은 자라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천하 모든 일이 내 손아귀에 있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 장담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홍국영이 그렇게 자신감 넘칠 수 있었던 요인에는 가문적 배경도 있었습니다. 본관이 풍산인 홍국영 가문은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으며 서울에 깊이 뿌리 내린 가문이었었습니다.
홍국영은 1772년(영조 48) 25세 때 과거에 급제한 뒤 왕 가까이서 일하는 예문관원(사관)이 되고 동궁을 보좌하는 춘방사서가 되었으며, 영조는 홍국영을 아끼며 ‘내 손자다’라고까지 했습니다.
정조가 홍국영을 신임하게 된 것은 충성심에다 빠르고 정확한 정세 판단 등 정치적 능력 외에도 당쟁에 물들지 않고 파벌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홍국영은 궁궐 밖 세상의 실상을 정조에게 알려주는 역할에도 충실했습니다. 말하자면 정조의 대국민 소통 창구가 바로 홍국영이었던 것입니다.
홍국영은 정조의 기대와 신임에 부응하여 외척인 홍인한과 정후겸 세력에 맞서 정조의 대리청정을 성사시키는 등 고비마다 정조를 보위하고 역할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 경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겠는가.
홍국영은 정조가 즉위한 후 도승지, 숙위대장, 훈련대장, 금위대장 등을 맡아 국정의 주요 사안은 홍국영을 거치지 않으면 정조에게 보고되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정조는 즉위 직후 ‘국영과 갈라서는 자는 역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 대한 두터운 신임을 거리낌 없이 밝혔습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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