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52)> 고종 10 - 일본의 대 변신!

이찬조 2021. 5. 30. 22:00

<조선왕조실록(152)> 고종 10 - 일본의 대 변신!

 

1853년 그러니까 조선(병자수호조약으로 원산 1880년3월23일 통상개시)보다 불과 27년 일찍 외세에 의해 개항한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세상의 예상과 달리 청나라를 이겼고, 10년 후인 1904년에는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또 이겼으며, 그 이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하였습니다.

 

조선과 별 차이가 없던 일본은 어떻게 이렇게 발전해 나갔고, 반면에 일본과 별 차이가 없던 조선은 어떻게 하다가 세계 강국은커녕 일본에 힘 한 번 못써보고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는 신세가 되었을까.

 

국민성 차이인가? 모든 국민은 위대하다는 점에서 공통되므로 결국 지도층의 인식과 자질, 능력차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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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문호를 개방한 1853년경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전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통일을 이루고 에도(현 도쿄)에 수립한 일본의 무신정권입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당초 조선처럼 외국과의 교류를 거부하다가 중국의 아편전쟁 여파로 1854년 미국과 불평등조약인 미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개항 직후 도쿠가와 막부는 영국, 네덜란드, 러시아, 프랑스 등과도 연이어 조약을 맺고 강무소를 설치해 서양식 군대훈련을 실시하는가 하면 총포제작소를 세웠으며 서양에 유학생을 파견하는 등 개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서양 열강과의 무역에 불균형이 일어나면서 민중들의 생활이 어려워졌고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혼란이 생기면서 하급 무사들 가운데 막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급격히 늘어갔습니다.

 

이들은 처음 개화를 반대했지만, 곧 서양의 앞선 힘과 세계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살 길이라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막부는 전국적으로 반 막부 세력이 거세지자 큰 위기감을 느꼈고 결국 국가통치권을 천황에게 자진 반납하고 생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대정봉환)

 

막부의 계산은 천황은 형식적으로만 두고 자신들이 국사를 계속 담당한다는 것이었지만 반 막부 세력은 군대로 궁을 포위한 채 천황 중심의 정부를 세워버렸습니다.

 

이에 막부 쪽이 반발해 마지막 전쟁을 일으켰지만 새 정부가 승리했고, 1868년 드디어 천황이 메이지 연호를 사용하면서 메이지 유신이 선포되었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하여 부국강병을 도모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곧 이어서 조선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화끈한 개혁조치를 정말로 시행하였습니다.

 

신분제도를 완전히 철폐하고 서양식 산업혁명을 시작하였으며, 서양식 머리, 양복, 식단(쇠고기와 우유), 양력 등 서양의 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라 할 만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고 이후 대륙 침략 정책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조선과의 국력 차이는 말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