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54)> 고종 12- 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2)

이찬조 2021. 5. 30. 22:02

<조선왕조실록(154)> 고종 12

- 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2)

 

1876년(고종 13년) 일본 배 4척이 또 다시 강화로 접근했습니다.

 

- 귀 국의 대신을 만나 의논하고 조약을 맺으려 하는데, 응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서울로 올라갈 것이오.

 

- 대체 조약이라는 게 무엇이오?

- 두 나라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규범에 따라 체결하는 약정입니다.

 

- 이미 수백 년 동안 무역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조약이라는 것을 맺을 필요가 있소?

 

- 무역을 하는 나라는 조약을 맺어야 하는데 그것이 국제적 관행이오.

- 국제적 관행 ???

 

1875년 2월 10일,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체결을 위해 마주앉은 조선 대표 신헌과 일본 대표 구로다 사이에 처음으로 오간 이 대화는 이 조약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 줍니다.

 

- 여기 초안을 잡은 13개 조약을 상세히 열람하고 임금에게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

 

- 만일 화목하던 관계가 나빠지면 우리 군사들이 상륙하는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양국 대표가 협의하여 조약 내용을 결정하기보다 일본의 일방적인 요구를 조선이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모양새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본의는 수호조약 체결이 아니라 전면전을 벌이려는 것이라는 의혹에 차 있던 조선은 처음부터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의 회담 이후 다소 조정된 조약안이 15일에 조선 조정에 회부되었고, 조정은 숙의 끝에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하니 이것이 바로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입니다

 

- 조선 정부는 종전의 부산 외에 항구를 개항하여 일본국인들이 오가며 통상하게 한다.

 

- 일본국 항해자들이 수시로 조선국 해안을 측량할 수 있도록 한다.

 

- 일본인이 조선의 지정한 항구에서 범죄 했을 때 만일 조선과 관계되면 일본에 돌려보내어 수사, 판결하게 한다.

 

고종은 그리 우매한 군주는 아니었으나, 당시 상황에서 조약의 의미와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무리였습니다. 조정 신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사태를 큰 위기로만 여겼는데 다행히 잘 넘기고 국가의 위신도 지켰다며 조약 수립을 기꺼워했고, 신헌 등은 큰 포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엄연히 국권침탈행위였고, 이를 계기로 조선은 도마 위의 생선 신세가 되고 맙니다.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지 못한 대가는 참으로 고통스럽고도 슬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