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168)> 망국 5 - 조선의 1894년(3)
오랫동안 지주와 관리의 수탈에 이를 갈며 기회를 엿보던 전봉준이 드디어 일어섰습니다.
전봉준은 뜻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 이제 우리가 꿈꿔 온 일을 펼칠 때가 되었다.
의견을 모은 그들은 사발통문을 만들어 돌렸습니다.(사발통문은 사발 모양으로 발기자들의 이름을 빙 둘러 쓴 통문을 말함)
그 내용은 이전의 민란에서 보였던 주장들과는 질이 달랐습니다.
- 고부성을 함락해 조병갑을 목베어 죽일 것.
- 군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할 것.
-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을 침탈한 탐리를 엄히 징벌할 것.
- 전주 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나아갈 것.
그동안의 민란은 과격하기는 하였으나 수령을 잡아 죽일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등 기본적으로 나라의 틀을 깰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전봉준의 사발통문에는 군수 조병갑을 목 베어 죽이고 전주 감영을 함락한 후 서울까지 진격하겠다는 것이니, 이는 국가적 차원의 변혁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봉준이 이런 뜻을 공공연히 밝힌 것은 백성의 등골을 빼는 수탈이 수령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나라의 구조적 문제이어서 절대로 고쳐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데 기인한 것이고, 나아가 동학 조직을 통해 교감한 인물들이 함께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894년 1월, 고부 말목장터에 모인 군중들은 전봉준의 지도 아래 고부 관아로 들이쳤습니다.
조병갑이 이미 달아난 고부 관아를 점령한 이들은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고 무기고를 부수어 무장을 했고, 곡식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를 헐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기세를 올린 농민군은 고부 일대를 점령한 채 한 달을 보냈으나, 애초의 선언대로 전주 감영으로 진격할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인근 지역과 다른 동학 지도자들의 호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이러다 고립된 채 진압되는 거 아냐?
때마침 고부에서 농민들이 봉기했다는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신임군수로 박원명을, 봉기를 진압하고 조사할 안핵사로 이용태를 내려 보냈고, 박원명이 회유책을 쓰자 농민군이 사실상 와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전봉준의 뜻이 꺽이는 듯 했으나, 그 뒤에 나타난 이용태가 봉기 참가자와 주모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백성들을 줄줄이 잡아갔고, 특히 농민들이 주축이었던 민란의 책임을 동학교도에게 전가하며 동학을 강력히 탄압하였습니다. 다시 봉기의 불길이 번졌습니다.
- 이번엔 장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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