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167)> 망국 4 - 조선의 1894년(2)
1894년 1월 10일 저녁, 전라도 정읍 말목장터에서 울리는 때 아닌 풍물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수천을 헤아리는 군중들이 모이자 그들 앞에 5척 단신의 사내 하나가 우뚝 섰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담력은 산같이 컸고 눈은 샛별같이 빛났다던 전봉준입니다.
- 우리가 피땀 흘려 지은 곡식이 저 악랄한 자들에게 들어간 지 오래되었소. 여기에 조병갑마저 다시 부임해와 어제의 행패를 오늘 또 하고자 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후회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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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에 태어난 전봉준의 집안은 본디 벼슬을 했던 양반 가문이었으나 아버지 대에 이르러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자 몰락해 간 것으로 보입니다.
전봉준은 고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후 떠돌아다니다 서른 살 즈음 고부 마을로 들어와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풍수도 보고, 사람들의 길흉사에 날을 잡아주기도 했으며, 편지나 소장도 대필해주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호남 지역은 비옥한 농토를 가지고 있었고 서해안의 풍부한 해산물까지 얻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부패한 지방 관리들이 이 땅을 한밑천 챙기는 수단으로 여겼다는 데 있었습니다.
당시 군수인 조병갑은 세도가 풍양 조씨 척족(성이 다른 친족, 친족은법률상의 의미로는 피붙이인 혈족과 혼인으로 맺어진 척족인 인척을 말하며 이러한 넓은 의미의 친족은 보통 친척이라고 하는데 이는 관습상의 친족과 척족을 말한다)으로서 수탈의 달인이었습니다.
- 황무지 개간 시킨 후 징세하고 빼앗기
- 아버지 공덕비를 세울 경비 거두기
- 강제로 만석보를 쌓게 한 다음 물세 거두기
- 죄명 만들어 잡아들인 후 면죄 대가 받기 등 등
군수 외에도 양전 사무를 맡아보던 양전사, 세곡 운반을 담당한 전운사 등의 불법 수탈이 더해져 고부 군민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 끼니때인데도 연기 나는 집이 몇 없다!
견디다 못한 군민들은 전봉준을 찾아 소장을 써달라고 한 후 이를 가지고 관아로 갔지만, 돌아온 것은 매질과 구금이었습니다.
- 어디서 이런 불순한 행태를 배웠느냐! 퍽! 퍽! 퍽!
군민들은 몇 번이고 관아로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조병갑은 이들을 난민으로 몰아 엄한 형벌로 다스렸고,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도 이 일에 앞장섰다가 난민으로 몰려 체포되어 죽기에 이르렀습니다.
군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 젠장,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바탕 해봤으면 원이라도 없겠네!
예나 지금이나 나랏돈은 눈먼돈이요 국민혈세는 자기 배채우기 일수고, 서민들이야 굶어죽던 말던 온갖 비리를 저지르던 넘들은 세도가를 등에 업고 세상 천지를 주무르니 국민을 위한 공무원을 찾을 길이 없다.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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