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86)> 망국 23 - 을사조약(2)

이찬조 2021. 6. 19. 13:24
<조선왕조실록(186)> 망국 23 - 을사조약(2)

고종황제와 대신들이 위협에 쉽게 넘어가지 않자, 이토히로부미는 11월 17일, 경운궁에서 어전회의를 열도록 강요했습니다.

궁궐 안팎이 일본 군대에 의해 몇 겹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드디어 어전회의가 열렸습니다.

어전회의가 열리자, 고종황제도 대신들도 조약의 체결을 반대했지만,

힘없는 자가 하는 반대나 거부의 모양새는 처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5시간 넘게 어전회의가 이어졌지만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고,

이에 초조해진 이토히로부미는 하세가와 군사령관과 헌병대장을 대동하고,

일본헌병 수십명의 호위를 받으며 궐내로 들어가 노골적으로 위협과 공갈을 자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토히로부미는 직접 대신들에게 가부를 따져 물었습니다.

이토히로부미 앞에서,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이 불가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책임을 황제에게 전가하면서 결과적인 찬의를 표하였습니다.
이들 다섯 명을 을사오적이라 합니다.

이토히로부미는 8명의 대신 중 5명의 대신이 조약체결에 찬성하였으니 조약 안건은 가결된 것이라 선언하였습니다.

그때 한규설 참정대신이 억울함과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통곡하기 시작했고,

이토히로부미는 “별실로 데려가고, 더 떼를 쓰거든 죽여 버리라”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날 밤 궁내대신 이재극을 통해 황제의 칙재를 강요하였고,

같은 날짜로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공사 하야시곤스케 간에 이른바 이 협약의 정식 명칭인 ‘한일협상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을사조약의 내용은 대략 이런 것입니다.
1. 일본은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지휘한다.
2. 한국은 일본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조약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
3. 일본은 한국에 1명의 통감을 두어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고 한국 황제를 친히 만날 권리를 갖는다. 일본은 필요한 곳에 이사관을 두고,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 하에 종래 재한국 일본영사에게 속하던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협약의 실행에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맡는다.

불과 1세기 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이와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