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4 - 태조 3

이찬조 2021. 7. 8. 20:45

* 포악해진 궁예, 망조의 길로 들어서다....

 

왕건은 상주 사화진에서 견훤의 군대와 여러차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궁예의 영토는 더욱 넓어졌고 군대도 한층 강력해지자 궁예는 신라를 흡수할 뜻을 품게 됩니다. 그는 신라를 멸도(滅都)라 불렀으며, 항복해 오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듣기 싫은 충언을 하거나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은 신료들을 억지 논리로 처단하는 등 만행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궁예의 만행이 심해지자 왕건 역시 궁예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중앙 정치 무대를 떠나 지방 근무를 자청하여 변방으로만 나돌게 됩니다.

한편 왕건과 견훤은 여러차례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투가 덕진포해전입니다.

 

견훤은 모든 함선을 총 동원하여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목포에서 덕진포항(지금의 전남무안)까지 전함들을 늘여 놓고 위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끝이 안보일 정도로 늘어선 견훤의 군대를 본 왕건의 군사들은 머뭇거리기 시작하고 겁을 먹은 빛이 역력하였는데, “걱정말라.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군대의 의지가 통일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지 수가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나를 믿고 따르라”

 

그러고는 곧바로 진군하여 급습을 가하자 견훤의 군대는 당황하여 퇴각하기 시작하였고 때맞추어 불어오는 편서풍을 따라 화공을 가하니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가 태반이었습니다.

 

견훤은 삼십육계 ---. 이 전투로 왕건은 견훤의 군대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었고 궁예는 삼한 전체지역의 절반 이상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왕건이 913년 압해현 반란군의 두령 능창까지 잡아 죽인 후 수도로 귀환하자  궁예는 파진찬(국방장관 또는 군총사령관 급)으로 임명하고 시중(국무총리)까지 겸하게 하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파진찬에 시중까지 겸직하게 되어 문무의 권력을 총괄하고 백관의 우두머리가 된 왕건이지만, 아첨을 좋아하고 변덕스럽고 포악한 궁예의 화살이 언제 어디에서 날아올지 모르므로 항상 몸조심 입조심 하다가 외방의 벼슬을 청하여 수군대장의 신분으로 정주에 내려가 전함 70여척을 수리하여 나주에 머무르게 됩니다.

 

왕건이 다시 나타나자 인근의 백제군대는 항상 비상사태이고, 해상 강도 등은 감히 준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포에 배를 대고 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마침 하늘에 홀연 오색의 운기가 내리비치고 있는지라 배에서 내려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한 아녀자가 빨래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고려의 2대왕 혜종을 낳은 장화왕후 오씨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장화왕후 오씨는 나주사람으로 대대로 나주의 목포에 살았는데 오씨가 일찍이 포의용이 자신의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어 기이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때마침 왕건이 목포에 이르러 오씨를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왕건은 그날 밤 오씨를 품에 안았습니다. 꾸며낸 이야기 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오는데, 오씨가 워낙 미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왕건은 오씨가 임신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절정의 순간 오씨의 몸속이 아닌 이불에다 사정을 하여 버렸는데, 오씨가 급히 이불 위의 정액을 자기 몸속에 쓸어 넣어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임신을 하게 되고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곧 혜종입니다.

미천한 신분의 오씨가 낳은 혜종이 극적으로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후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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