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2-태조 1

이찬조 2021. 7. 8. 20:43

* 영웅의 탄생, 왕건 성주가 되다.

 

 877년 정유년 정월 병술일 하늘에서 송악의 금성태수 집안에 신비한 광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상서로운 빛은 온 종일 계속하여 집안을 휘감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바로 시대의 영웅 왕건이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천년왕국 신라의 국운이 서산에 걸린 저녁 해처럼 쓸쓸히 기울어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전국 각지에서는 반란군이 일어나고 중앙정부는 이를 제압할 힘은 없고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무법천지의 여러 반란군의 괴수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수뇌가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견훤과 궁예였습니다. 

 

남쪽 땅에 웅거하며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의 땅에 웅거한 태봉의 궁예, 이들은 천년왕국 신라의 경순왕과 함께 후삼국 시대를 열어갈 당대의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삼국의 혼란을 잠재우고 새로운 왕조를 일으킬 진정한 영웅은 그때야 비로소 탄생하였는데, 바로 고려의 창국주인 왕건입니다. 

 

왕건의 자는 약천이고 송악군에서 877년 정유년 정월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금성태수 융(세조), 어머니는 한씨(위숙왕후)인데,

왕건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상이 탁월하고 음성이 웅장하였으며 세상을 견줄만한 도량을 갖춘 인재 중에 인재이었습니다.

 

18세가 된 왕건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장대비가 쏟아져 하늘을 뒤덮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최종진을 찾아 꿈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는데 최종진은 원보 최상흔의 아들로 총명 예민하며 학문을 즐기고 경사에 널리 통달하였으며 특히 천문과 복서(卜筮)에 정통한 인물이었습니다. 

 

왕건의 꿈 이야기를 듣던 최총진은 “이는 필시 장차 삼한을 통합하여 다스릴 징조가 분명합니다. 다만 하늘의 뜻을 헤아려 거사를 일으켜야할 줄 아오.”

 

 “이제 자세히 관상을 보니 비록 젊으시나 영웅적 기상이 다분하고, 의젓하시어 하늘도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꿈의 내용대로 전력을 기울여 행하소서.”

 

왕건은 최총진의 이름을 지몽(知夢)이라 고쳐주고 평생 뜻을 함께할 동지로 삼았으며 최지몽 또한 한시도 왕건의 곁을 떠나지 않고 후삼국 통일 이후에도 최측근 참모로서 왕건의 총애를 받았으며 왕건 이후에도 혜종 경종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임금들의 총애를 받으며 국가에 봉사하다가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혜종의 암살을 막은 공로 등 그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

 

한편 왕건의 아버지 왕융(세조)은 당시 송악군 사찬(沙飡, 현재의 차관 벼슬)으로 비록 신라의 녹을 먹고는 있었으나 무너져가는 신라의 모습에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나라를 버리는 것이 도리는 아니나 어차피 가망이 없는 나라가 아닌가, 과연 세상을 구하고 강력한 왕조를 건설할 사람은 누구인가.” 풍수가의 예언도 있었겠다, 야망이 있는 그는 아들을 위하여 896년 자기고을을 궁예에게 바치고 당대의 영웅 궁예의 밑으로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게 됩니다.

 

궁예는 기뻐하며 그를 태수로 삼았으나 왕융은 에에 만족하지 않고 “대왕께서 만일 조선 숙신 변한까지를 포함하여 치세를 하시려면 먼저 송악에 성을 쌓고 나의 맏아들을 성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하고 청하였습니다.

 

궁예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거저 얻은 땅이므로 망설임 없이 발어참성(勃禦塹城, 지금의 개성 귀인문 부근)을 쌓고 나이 스물에 불과한 왕건을 성주로 삼았습니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부친 덕분에 왕건은 당대의 영웅 중에 한사람인 궁예의 밑에 들어가 대망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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