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 실록 5 - 태조 4

이찬조 2021. 7. 8. 20:47

* 위기에 빠진 왕건

 

왕건은 나주와 목포를 안정시키고 나서 내키지는 않지만 궁에 돌아가 해상의 이익과 임기 응변할 군사 대책들을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궁예는 여러 대신들 앞에서 “나의 장수들 중에서 누가 이 사람과 비할 자가 있으랴” 하고 왕건을 진심으로 칭찬하였습니다.

 

그 시절 궁에서는 반역이라는 죄명으로 하루에도 적게는 십여 명씩 반역 죄인의 가족과 9족까지 멸할 때는 심지어 백여 명이 죽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영토가 넓어지고 왕국의 체제가 정비되어 갈수록 궁예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지위를 노리고 반역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를 이기지 못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미륵관심법을 체득하여 부녀자들의 음행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궁예는 늘 이렇게 소리치며 부녀자들까지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3척이나 되는 큰 쇠방망이를 만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달구어 여자든 남자든 급소를 찔러 비벼서 연기가 코와 입으로 나오게 하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그야말로 극도의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건은 궁예에게 불리어 갔습니다.

 

궁예는 처형당한 사람들로부터 몰수한 금은 보물과 가재도구들을 점검하다 말고 성난 눈으로 한참이나 왕건을 째려보다 “그대가 어젯밤에 사람들을 모아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음모한 것은 웬일인가?” 이거야말로 청천벽력 그러나 왕건은 얼굴빛이 조금도 변함이 없이 태연하게 웃으며 대꾸하였습니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격노한 궁예는 “그대는 나의 관심법을 모르느냐 지금 입정하여 보고 나서 그 일을 이야기하겠다.”

 

궁예는 눈을 감고 뒷짐을 지더니 고개를 하늘로 젖힌 채 한동안 관심법에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궁예의 마음먹기에 따라 왕건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바로 그때 장주(掌奏)로 있던 최웅이 붓을 떨어뜨리고 뜰로 내려가 이를 주우러 가는 척하며 왕건 곁을 지나면서 귓속말을 했다.

 

“왕의 말 그대로 복종하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이오” 왕건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예스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실은 제가 모반하였으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궁예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왕건을 바라보며 껄껄 웃으며 “그대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앞으로는 절대 나를 속이지 마라.” 하고 금은으로 장식한 말안장과 굴레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 때마침 최웅이 없었더라면 고려라는 나라는 건립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후 이 땅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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