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11- 태조10

이찬조 2021. 7. 11. 14:55
고려왕조실록 11 - 태조 10

*다시 맞붙은 고려와 후백제, 고창전투

공산 전투에서의 패배로 고려는 경상도 서북쪽의 주도권을 완전히 견훤에게 내주게 되어버렸고, 경상도로 통하는 길이 막혀버린 고려는 이 지역을 되찾으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상도 서부를 점령한 견훤의 군대는 약탈과 만행을 일삼는지라 이지역의 민심은 고려 태조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습니다.

견훤은 929년 7월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의성부(경북 의성지방의 행정부)를 급습하여 호족 홍술을 죽여 버립니다. 자신을 지지해 주던 홍술이 죽자 태조는 더 이상 견훤을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고 아무래도 견훤과 일전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한동안 큰 전투는 없었으나 훈련에 정진해온 견훤의 군사들은 성난 노도와 같았습니다. 이윽고 고창(안동)까지 질주 해온 견훤의 군대는 성을 에워싸고 연일 거센 공격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고창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 태조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병산까지 나아가 진지를 구축하였고, 견훤 역시 부근의 석산에 주둔하니 양 진영의 거리는 오백보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태조와 견훤의 군대는 사나흘 동안 역사에 유래가 없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데 그 짧은 기간에 죽은 병사들이 8천명이 넘는다고 전해지고 있으니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었는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전투는 한 달이 넘도록 쌍방 간의 공방이 진행 되었는데, 차츰 견훤 쪽의 전세가 약간 기울기 시작하게 됩니다. 단기간의 전투라면 모르나 장기간의 전투에서는 결과적으로 양쪽의 군세라든지 전력에 의해 승부가 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태조는 그동안 저울질을 하고 있던 고창의 호족 김선평, 권행, 장정필이 이끄는 삼태사 군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왕건의 쪽으로 기울게 되고 견훤의 군대는 참패하여 도망치기에 이릅니다.

삼태사란 고창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고창의 호족 김선평, 권행, 장정필을 일컬어 삼태사라고 부르는데, 견훤이 신라를 급습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왕비까지 능멸하는 만행을 보이자, 본래 신라 태생들이었던 삼태사는 언젠가는 반드시 원수를 갚으리라 결심하고 군사를 모아 조련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경상도 서부를 점령한 견훤의 군대가 온갖 약탈과 만행을 일삼으며 민심을 잃자, 때가 멀지 않았음을 예측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이었는데 마침내 태조 왕건과 호흡을 같이하여, 견훤에게 결정타를 먹이는 수훈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태조는 고창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그들의 공을 높이 치하하면서, 본래 그들의 성은 경주 김씨 이었는데 김행에게는 “권”, 김정필에게는 “장”, 김선평에게는 그대로 “김”씨 성을 주어, 각각 안동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삼태사의 묘는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24번지에 있으며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향을 드리고 있습니다.

고창 전투에서 참패한 견훤의 군대는 그 피해가 엄청 심각하였습니다.

수많은 정예병 들이 전사하였을 뿐 아니라 우위를 점하고 있던 군세마저 형편없이 기울어 향후 후백제 전체가 내분에 휩싸이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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