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13 - 태조 12
*견훤 아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다.
934년 정월, 태조가 서경으로 가서 북방의 여러 진을 두루 순찰하며 국경 방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아왔을 때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이 백성 수만 명을 데리고 와서 귀화하였습니다. 집권초기부터 민족화합 정책을 펼쳐오던 태조는 기뻐하며 그에게 왕계(王繼)라는 이름을 주어 왕실 족보에 등록하고 원보의 품계를 주어 백주고을을 식읍으로 하사하였습니다. 이처럼 발해인들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태조 왕건의 인품이 널리 알려져 그 후로도 많은 발해의 유민들이 무리지어 귀화를 하게 됩니다.
9월 정사일이 되자 태조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운주(충남 홍성)를 정벌하였습니다. 이때 견훤과 싸워 대승을 하였는데, 이 전투가 태조가 견훤과 벌인 마지막 전쟁입니다. 이후로는 견훤이 아들에게 나라를 빼앗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935년 봄으로 접어들면서 후백제에는 나라를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을 하는데 이는 어처구니없게도 견훤이 큰아들 신검에게 나라를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잠깐 견훤에 대하여 언급하자면,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상주 사람으로 성은 원래 이씨였지만 견씨로 성을 고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자개로 농사를
짓는 농부였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전해오는 일화가 있습니다. 견훤이 강보에 싸여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견훤의 어미는 아기를 잠깐씩 수풀에 두고 밭일하는 아버지에게 밥을 가져다주었는데 그 사이에 견훤이 배고파 울 때마다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합니다. 견훤의 몸집이 크고 기운이 범상치가 않은 연유가 호랑이 젖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만 진실은 알 수가 없는 것이고---.
아무튼 견훤은 창끝을 베고 잘 정도로 호방하고 무예가 출중하여 마침내 장군이 되었는데, 신라 진성여왕 시절, 사회 기강이 문란해지고 기근이 겹쳐 민심이 사나워지자 이를 틈타 견훤은 따르는 부하들을 데리고 892년에 후백제라는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경주 인근을 휘젓고 다니는 한 달 동안 군사가 5천이나 불어났는데, 민심을 얻자 의기양양해 이렇게 소리쳤다 합니다. “김유신과 소정방이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켰다. 백제 건국 6백여 년만의 일이다. 내 어찌 울분을 씻지 않으랴.”
견훤 역시 왕건과 마찬가지로 지방 호족들의 딸들을 부인으로 맞아 들여 부인들이 많았습니다. 휘하에 아들들도 열댓 명이나 되었는데, 견훤은 그중에서도 넷째아들 금강을 유달리 아껴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는데 그의 형들 신검, 양검, 용검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935년 봄에 신검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키고 금강을 죽여 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가엾은 완산 아이가/ 아비를 잃고 눈물 흘리네.” 슬픈 노래가 그때 불리었습니다. 석 달이나 절에 갇혀 있던 견훤은 가까스로 나주로 도망쳐 고려의 태조에게 도움을 청하자 태조는 유금필 장군을 보내 그를 극진히 맞이하고 상부(尙父)의 지위와 양주(楊州)를 식읍으로 주며 예우를 하였습니다.
아들에게 대한 증오와 복수심에 차있던 견훤은 어느 날 태조 앞으로 나아가 신검을 하루 빨리 정벌할 것을 종용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전하에게 몸을 의탁한 것은 전하의 위세에 의탁하여 반역자를 주살하기 위함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병사를 보내 난적을 멸망시켜 주신다면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하고 출병을 간청하였습니다. 견훤의 청을 수락한 태조는 친히 11만 대군을 거느리고 선산으로 진군하여 신검의 군대와 조우하게 됩니다. 태조의 선봉대가 북을 치며 돌격하자 후백제의 장군들은 태조의 군대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갑옷을 벗고 투항하였으며, 신검의 중군을 삼면에서 협공하자 신검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신검이 지휘한 후백제가 견훤의 눈앞에서 멸망하는 것을 목도한 견훤은 깊은 번민과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잔등에 부스럼이 나고 화병이 도져서 얼마 안가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후백제라는 국가를 건국하여 통치하고 신라, 태봉, 고려, 등과 자웅을 겨루었던 한시대의 영웅 중에 한사람인 견훤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가면서, 통일왕국 고려의 탄생은 눈앞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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