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14 - 태조 13

이찬조 2021. 7. 13. 07:34

고려왕조실록14 - 태조 13

* 통일왕국의 탄생과 훈요십조 그리고 태조의 죽음.

후백제의 멸망에 앞서 935년 10월 신라 경순왕이 시랑 김봉휴를 보내 고려 정부로 들어오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고려에 신하의 예로써 굽히고 들어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이를 수락하자 경순왕은 백관을 거느리고 개경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신라의 수많은 백성들 또한 이에 뒤질세라 왕의 일행을 따라 북으로 행하였습니다.

30리도 넘게 이어진 경순왕의 행렬이 고려의 개경에 도착하자, 태조는 의장병을 갖추고 교외로 나가 그들을 영접하였는데, 경순왕은 태조에게 다음과 같은 취지의 글을 올려 자신의 뜻을 밝혔습니다. “본국이 오랫동안 위기를 겪고 운수가 벌써 다 진해서 왕실을 보전할 희망이 없으니 신하의 예절로서 전하를 뵙기를 원하나이다.”

얼마나 후백제의 군대에게 괴롭힘을 당하였으면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를 송두리 채 들어 바친다고 하였을까. 경순왕의 처지가 딱하기만 합니다.

마침내 천년왕국 신라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민족 대통합 속에서 5백년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알리는 가슴 벅찬 사건이기도 합니다.

통일의 과업을 달성하고 난 태조는 나라의 기틀을 착실하게 다져 나감과 아울러 북방으로 영토를 넓히려고 노력합니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의 화친 요구를 무시하고 적대시하면서 서쪽으로는 청천강 동쪽으로는 영흥 이북까지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란과 여진이 버티고 있어 영토를 더 확장해 봐야 지킬 힘이 없다고 판단한 태조는 아쉽게도 북방정책을 그 선에서 멈추고 맙니다.

태조는 943년 4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고 마는데, 그는 심복 박술희 장군을 불러 친히 국가를 경영할 계훈 열 가지를 내리고 마지막에 ‘중심장지’

(中心臟之 ; 마음속에 간직하라)라는 네 글자를 덧붙여서 후대 왕들이 대대로 전해 내려가면서 보배로 여겨 지키도록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첫째, 국가의 왕업은 반드시 부처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따라서 불교를 잘 위하되 후세에 간신이 권력을 잡으면 승려들의 청촉을 받아 모든 사원을 서로 쟁탈하게 될 것이니 이런 일을 엄격히 금하여야 한다.

둘째, 모든 사원은 도선(道詵)의 의견에 따라 산천의 좋고 나쁨을 가려 창건한 것이므로 함부로 사원을 짓거나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

셋째, 적자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장자가 불초(不肖)할 때에는 인망이 있는 자로 정통을 잇게 할 것이다.

넷째, 거란은 우매한 나라로 풍속과 언어가 다르니 그들을 배격하도록 할 것이다.

다섯째, 서경(평양)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므로 항상 그곳을 중시하여야 할 것이다.

여섯째, 연등(燃燈)은 부처를 섬기는 것이요, 팔관(八關)은 하늘의 신령과 5악(岳), 명산, 대천 용의 신을 섬기는 것이다. 이렇듯 중요한 행사를 소홀히 하면 아니 될 것이다.

일곱째, 임금이 백성의 신망을 얻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항상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여 백성의 뜻을 저버리지 말라.

여덟째, 차현(車峴 ; 차령산맥)이남 공주강(公州江) 바깥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방향으로 뻗었고 인심도 그러하니 그 지방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홉째, 백관의 녹봉과 상벌을 공평하게 할 것이다.

열 번째, 나라를 가진 자나 집을 가진 자는 항상 만일을 경계하며 경전과 역사서적을 널리 읽어 옛일을 지금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5월 병오일에 태조의 병이 더욱 중하여지므로 태조는 신덕전에 나아가 학사 김악에게 명하여 유조(遺詔)를 쓰도록 하였습니다.

초고가 이루어진 뒤로 태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좌우 신하들이 목매어 울부짖으니 그제야 태조가 이것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습니다.

“성상께서 백성의 부모가 되었다가 오늘 갑자기 여러 신하들을 버리고 가려 하시니 저희가 슬픔을 참을 수 없습니다.”

태조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조용히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덧없는 인생이란 옛날부터 으레 이런 것이다“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태조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삼한을 통일하여 오백년 역사의 고려를 창업한 태조 왕건, 4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지 26년이요, 향수 67세를 일기로 그는 이제 한줌의 흙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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