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16 - 혜종 2
*왕규는 충신인가 역적인가
왕규는 태조의 임종을 지킨 대신들 중의 한사람으로 태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경기도 광주를 근거지로 하는 강력한 호족이었으며 태조에게 제15비 제16비로 연달아 두 딸을 시집보낸 외척 세력이기도 합니다. 이를 보더라도 그를 태조가 얼마나 신임하였는지, 또 왕규가 갖춘 세력이 얼마나 강대하였는지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태조에게 두 딸을 바친데 이어, 태자인 무에게도 딸을 시집보내 태조의 장인이자 혜종의 장인이기도한 왕규는 박술희와 함께 태조의 유명을 지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주 유씨의 세력을 등에 업은 왕자 요와 소가, 서경에서 착실히 세력을 키워가고 있던 태조의 사촌 동생 왕식렴의 세력과 결탁하면서 더욱 강성해지자 불안감을 느끼고 혜종에게 고합니다. “전하 요즈음 왕자 요와 소의 동태가 심상치 않나이다. 서경의 왕식렴 무리와 결탁하여 필시 반역을 꾸미는 것이 분명하니 일의 전후를 낱낱이 밝히어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혜종 또한 전후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서서히 목을 죄어 오는 적대세력의 실체를 피부로 느끼면서도 혜종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취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 출생에서 알 수 있듯이 혜종을 지지하는 세력기반이 너무 미약하기 이를 데 없어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그들의 힘에 눌려서 왕위를 내놓는 것은 물론이고 목숨까지도 보전하지 못할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혜종은 왕규의 말을 따르는 대신에 배다른 두 아우 요와 소를 더욱 두텁게 대했으며, 심지어는 소에게는 자신이 낳은 공주 경화궁부인을 시집보내기도 합니다. 임금의 장인으로서 후견인임을 자처하던 왕규로서는 대단히 서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장인인 자기를 믿지 않고 오히려 왕권을 차지하려고 노리고 있는 적들의 손을 들어준 꼴이었으니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로 인해 도래할 자신의 앞날을 예상해 보기 마련입니다. 왕규는 혜종이 비록 자신의 사위이기는 하지만 가진 세력이 미약한데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배포도 결단력도 없어서 장차 왕자 요와 소가 벌일 왕위 쟁탈전의 희생양이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미 자신은 왕과 소의 반역이 우려되므로 제거해야한다고 발설한 마당에 자신의 안전을 바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왕규는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세력이 있으므로 다른 계산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딸이자 태조의 16비이기도 한 소광주원부인의 소생 광주원군을 왕위에 올리려는 계책을 떠올리고, 자신의 사위인 혜종을 시해해 버릴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나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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