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37 - 목종 3
* 왕가의 불륜과 목종의 죽음
앞서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사이에서 불륜의 씨앗이 태어난 바를 기술한 바가 있었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두개가 욕심나고,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 했습니다.
지금도 임금 못지않은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김치양은 천추태후와 자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권좌에 올려놓고 싶은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왕위계승은 태조 왕건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씨가 아니면 꿈도 꾸기가 어려운 사회 분위기이었으나 목종이 다음 왕위를 이어갈 왕자를 얻을 가망이 거의 없어 보이므로 김치양은 야망을 버리지 않고 기회를 엿보기만 합니다.
당시 김치양과 천추태후로서는 자신들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대량원군 왕순의 존재였습니다. 훗날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야욕을 극복하고 고려의 제8대 임금이 된 인물이 왕순 이었으니 말입니다. 왕순은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인 왕욱과 헌정왕후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헌정왕후는 친언니 천추태후와 마찬가지로 고려 5대 임금인 경종의 부인이 되었다가 경종이 죽자 궁궐 밖에 나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친언니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눈이 맞아서 불륜의 씨앗을 생산한 것처럼, 헌정왕후 역시 숙부뻘인 왕욱과 눈이 맞아 정을 통하게 되고 그 결과 생긴 불륜의 씨앗이 왕순 이었습니다. 그 언니에 그 동생 - 아마도 집안 내력이 그러한가 봅니다.
그런데 헌정왕후는 왕순을 낳자마자 죽어 버렸고, 왕욱이 전 임금의 부인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성종 임금에 의해 사수 현으로 귀양을 가게 되자 왕순은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버린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순의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귀양을 간 아버지 왕욱 마저 죽자 고아가 된 왕순은 왕가집안 자손의 자격으로 궁궐로 돌아와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던 차에 자연스레 자식을 낳지 못하는 목종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로 부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왕손은 모진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고려 왕실에는 자손이 아주 귀했습니다. 손이 많이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설사 태어난다 하더라도 어린나이에 병들어 죽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마도 근친간의 혼인으로 인해 열성인자가 왕가의 혈통에 질병과 불구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나하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왕가에 유난히 뇌성마비 등 불구자가 많이 태어났던 사유가 근친교배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던 것처럼 아마도 동일한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에 왕건의 혈통을 이어받은 남자아이는 왕손 뿐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왕손이 차기 임금으로 부상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종은 아들을 낳을 가망이 없고, 차기 대권을 왕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자, 김치양과 천추태후는 초조해진 나머지 대량원군으로 봉해진 왕손의 머리를 빡빡 깎아 숭교사라는 절로 보내 버립니다. 왕손이 출가하여 중이 되면 대권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아들에게로 돌아오리라는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왕손을 절로 보내버린 후에도 김치양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혹시나 왕손을 왕위에 추대하고자하는 세력들과 연락이 오가지 않는지 엄중한 감시를 합니다. 과연 불륜의 씨앗이 왕권을 차지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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