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38 - 목종 4

이찬조 2021. 7. 23. 07:18

고려왕조실록 38 - 목종 4

* 목종의 죽음

 

옛 임금들은 가뭄이 드는 등 자연재해가 찾아들면 두려운 마음으로 하늘에 빌거나 모든 것을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여기며 죄수들을 방면하는 등 어느 정도 미신에 집착하는 나약한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는 목종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006년 9월 무술일 천성전의 대마루 장식물에 낙뢰가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1009년 정월 경오일에는 숭교사에 다녀오는 도중에 갑자기 폭풍이 불어 일산대가 꺾기는 해프닝이 일어나고, 임오일에는 상고전에 관등을 하던 중 기름 창고에 불이 나서 천추전이 완전히 불타버리는 사고를 연속으로 겪게 됩니다. 단순한 사고 정도로 여기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였으나 심약한 목종은 이 사건들에 대한 근심걱정으로 병을 얻고 맙니다. 이때가 1009년 목종이 31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목종은 자신의 병이 깊어지자 채충순, 최항과 은밀하게 논의하여 왕손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기로 하고는 왕손을 데리러 황보유의를 신혈사로 보냅니다. 그러나 목종의 동정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김치양은 사전에 왕손을 제거해 버리기 위해 누차 신혈사로 자객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지스님의 지략과 적극적인 보호로 왕손은 목숨을 보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왕손을 살해하는데 실패하자 김치양은 우선 목종부터 제거하기 위해 병사들을 모으게 됩니다.

 

목종이라고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겠지요. 목종은 거란의 침략에 대비하느라 변방에 머물고 하였던 강조 장군에게 즉각 개경으로 돌아오도록 명을 내립니다.

 

어명을 받은 도순검사 강조가 군사 5000명을 이끌고 개경으로 떠난 것은 1009년 정월 20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개경으로 향하던 도중에 김치양이 보낸 위종정이 강조를 부른 것은 임금이 아니고 김치양이라고 거짓말을 함에 따라 강조는 다시 회군하는 등 잠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감지한 강조의 부친이 “지체없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라”는 서찰을 보내자 강조는 다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입성하게 됩니다.

 

궁궐을 접수한 강조는 김치양 일파를 모두 잡아 죽이고는 천추태후를 궁에서 내쫓아버립니다.

 

또한 동성애에 빠져 국정을 볼보지 않은 목종 역시 폐위시켜 버리고, 왕손을 보위에 옹립하니 그가 고려 제8대 임금인 현종입니다.

 

연총전에서 현종의 즉위식이 거행되는 그 시각에 폐위된 목종은 말 한 필에 의지한 채 기약없는 낙향 길에 올랐습니다.

 

욕정에 눈이 멀어 온갖 요물로 자신을 곤경에 빠뜨렸던 어머니 천추태후까지 모시고. 그래도 천륜은 어찌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여생을 충주에서 보낼 요량으로 충주로 향하면서 목종은 자신의 어머니는 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말을 몰았으며 어미가 배가 고프다면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 음식을 얻어 대접하였습니다.

 

한편 엉겹결에 임금을 폐위시켜 버린 강조는 훗날의 후환이 두려워 부하들을 보내 목종을 살해하도록 지시합니다.

 

전왕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 있으니 언제 어디에서 그의 추종세력에 의해 해를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에 불안을 떨구지 못한 강조는 상약직장(尙藥直長) 김광보와 안패를 불러 목종을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던 것입니다.

 

건장한 사내들이 목종을 따라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파주땅 적성에 이르러 목종을 따라잡고 새 임금께서 내린 하사주라하고 독약을 탄 술을 마시도록 하였으나 목종이 이를 낌새채고 마시지를 않자 그날 밤 마굿간에서 칼로 쳐 죽이고 목종이 자결을 하였다고 보고합니다. 목종의 죽음이 독살이나 자결설로 다른 것은 이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18세에 왕위에 올라 11년간을 재위하면서 욕정에 눈이 먼 어미와 그녀의 정부 때문에 제대로 된 임금노릇 한번을 못해보고 이리저리 눈치만보면서 자리를 지키다가, 그 자신 역시 동성애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고 나라를 망친 죄값으로 결국에는 신하의 손에 불귀객이 되고 마는 임금 목종, 이때 그의 나이 불과 30세였습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을 제공한 그의 어미 천추태후는 아들이 신하의 손에 죽어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충주로 향하던 그녀는 생각을 바꾸어 황해도 황주로 가서 조용히 여생을 마쳤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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