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39 - 현종 1
* 현종의 등극과 사회질서의 회복
앞장에서 잠시 봤드시 迂餘曲折을 겪은 끝에 고려 제8대 임금으로 등극한 현종은 이름이 순(詢)이고 자는 안세(安世)이며,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인 왕욱과 헌정왕후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헌정왕후는 친언니 천추태후와 마찬가지로 고려 5대 임금인 경종의 부인이 되었다가 경종이 죽자 궁궐 밖에 나와서 살았는데 숙부인 왕욱과 정분을 통하게 되고 그 결과 생긴 말하자면 근친간의 불륜의 씨앗이었습니다.
아버지 왕욱이 임금의 부인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성종에 의해 사수현으로 유배 길에 오른 뒤에, 어머니 헌정왕후는 현종을 낳다가 산욕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때가 992년 성종2년 7월 임진일 이었습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현종은 잠시 궁중에서 자라다가 아버지의 유배지 사수현에서 3년 남짓을 보내고 아버지 역시 유배지에서 죽자 왕가 자손의 자격으로 다시 왕궁으로 돌아와 왕궁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해 성종이 죽고 제7대 임금 목종이 즉위하였는데 현종은 12세가 되던 해에 대량원군으로 책봉이 되었습니다. 전왕 성종과 목종에게서는 왕자가 태어나지 않아 후사가 걱정이었는데 당시 고려 왕실에는 왕위를 이을 만한 왕가의 후손이 현종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현종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에 따라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에 의한 핍박은 전회에 상세히 기술한 바가 있습니다.
현종이 승려생활을 시작한 숭교사에서 신변안전이 불안하자 주지승은 현종을 1006년 양주 삼각산에 있는 신혈사로 옮기고 보호를 하는데, 김치양의 노골적인 살해위협은 그때부터 계속됩니다. 고려사를 보면, 신혈사 주지 진관대사가 방안에 땅굴을 만들어 그 속에 현종을 숨기고 그 위에 침대를 만들어 놓고 이불을 쌓아놓아 자객으로부터의 살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었던 현종이 강조의 변란에 힘입어 왕으로 즉위하게 된 때는 1009년 2월이었습니다.
그 역시 선왕 목종과 마찬가지로 약관 18세에 권좌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현종의 사후에 이루어진 사관 최충의 평을 보면 “하늘이 그를 흥왕하게 하려는데 누가 그를 없앨 수가 있단 말인가?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굴곡 많은 현종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건데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종 임금도 어찌하지 못했던 천추태후와 그녀를 등에 업고 날뛰던 김치양의 서슬 퍼런 칼끝을 피해 살아남아 지존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에게 진실로 하늘이 그를 흥왕케 하였다는 표현은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등극한 임금이지만 온실 속과 같은 궁궐에서 귀하게만 자란 다른 왕들과는 달리 현종은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온 임금답게 무척이나 당당하고 늠름하였습니다. 현종은 먼저 목종 시대를 거치면서 헤이해진 조정의 기강과 사치향락 풍조를 바로 잡고자 교방(敎坊, 관기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던 곳)을 혁파하고 궁녀 백여 명을 사가로 돌려보내 주었으며 낙원청을 헐어내고 각종 진기한 어류 조류 짐승들도 방생하여 주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현종의 치세는 급기야 고려왕조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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