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40 - 현종 2

이찬조 2021. 7. 23. 07:19

고려왕조실록 40 - 현종 2

* 왕조의 기틀은 다졌으나 또다시 거란의 침공을 받다.

 

건국 초에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를 통하여 국가의 기본 방향이 일단계로 정비된 시기는 성종 때였으며, 목종 대에서는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다가 현종 대에 이르러 상당한 기틀을 다졌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먼저 고려 내부에서 이루어진 치적을 보면, 호족세력을 직접 지배하기 위한 통제 책을 마련하였으며 군현제를 완성하였다는 점이 눈에 띄는 치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즉, “경-목-도호-군-현-진” 이라는 군현제의 기본체제가 완성된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현종은 군현제를 유지하고자 각 군현의 호장 등 향리의 규정, 향리의 공복을 제정하기도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왕권의 기반을 다지고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해 놓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내적으로는 큰 무리 없이 뜻한 바대로 나라의 기틀을 다져 나갈 수가 있었으나 대외 문제에서는 즉위 초기부터 크나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1010년의 거란의 2차 침입과 1018년의 3차 침입이 그것입니다. 현종이 즉위하자마자 감행된 거란의 2차 침입은 강조의 변란이 빌미가 되었습니다.

신하가 함부로 임금을 내쫓고 죽였으니 거란에서 직접 강조를 징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거란의 침입에는 다른 원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993년 성종12년 제1차 침입 때 고려에 떼어준 강동 6주를 되찾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고려가 계속 송나라와 화친을 지속하자 고려를 공격하여 이를 막아보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거란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들어왔고 현종은 결사항전의 뜻을 표명하였고 이에 부응하듯 당대 최고의 장군 강조는 거란과의 싸움에서 연승을 거두었는데 자만에 빠져 방심하는 사이에 거란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거란의 성종은 강조를 회유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였으나 강조는 “나는 고려의 신하일 뿐이다” 라며 성종의 회유를 거절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고 이때부터 고려군은 연패를 거듭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현종은 개경을 버리고 나주까지 피난을 가지만 거란군은 더욱 거세게 국토를 유린하여 왔습니다. 거란은 현종의 입조를 조건으로 철병하였습니다. 거란군대의 엄청난 군세에 혼쭐이 났으니 현종이 입조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종은 시간을 끌다가 끝내는 거란의 요구를 거절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거란은 현종의 입조와 강동6주의 반환을 요구하며 또다시 침공을 해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의 고려가 아닙니다. 2차 침공 후 3차 침입까지는 8년의 세월이 있었고 그 기간에 동여진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던 현종인지라 튼튼한 국방을 위하여 강력한 군대를 길러왔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3차 침공에서 거란군은 고려군에 연패를 당하고 결국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퇴각을 하고 맙니다. 게다가 퇴각하던 도중에 고려의 강감찬 장군의 군대를 만나 귀주에서 전멸을 당하고 맙니다.

 

고려의 막강한 군사력을 실감한 거란은 이듬해 고려와 강화조약을 맺었고 이후 13세기 중엽 몽고의 침입을 받을 때까지 고려는 약200년간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거란과의 전쟁 중에도 현종은 불교의 힘으로 외침을 막아 보고자 대장경 6000여권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는 문화 부문에 현종이 남긴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불륜의 씨앗으로 냉대만을 받을 뻔 했던 현종, 운 좋게도 태조 왕건의 유일한 혈손이라는 이유로 대량원군에 책봉되고 차기 대권을 이어받을 위치에 서게 되었으나 누차에 걸쳐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고 마침내는 고려의 임금이 될 수 있었던 현종, 그는 어려움을 겪은 사람답게 의지가 강하고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각별했던 현종은 왕조의 기틀을 굳건히 다짐으로써 덕종과 정종이 안정적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고는 1031년 5월 신미일에 숨을 거두게 되니 향년 40세요. 재위 연수는 22년이었습니다.

 

현종은 12명의 부인을 두었고 아들들 중에서 9대 덕종, 10대 정종, 11대 문종이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고려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왕조실록 42 - 정종1  (0) 2021.07.24
고려왕조실록 41 - 덕종  (0) 2021.07.24
고려왕조실록 39 - 현종 1  (0) 2021.07.23
고려왕조실록 38 - 목종 4  (0) 2021.07.23
고려왕조실록 37 - 목종 3  (0)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