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50

이찬조 2021. 7. 28. 07:45

고려왕조실록 50 - 선종 2

* 대각국사 2

 

1097년(숙종 2) 2월에 국청사(國淸寺)가 완성되자, 같은 해 5월에 초대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강의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천태종의 개립을 보게 되었으며, 그 뒤 1099년에는 제1회 천태종의 승선(僧選)을 행하고, 2년 후에는 국가에서 천태종 대선(大選)을 행하였습니다 이로써 천태종은 세상에서 공인된 한 종파가 된 것입니다.

 

의천은 원래 화엄종 계통의 승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천태교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천태종을 개립하게 된 까닭은 천태의 근본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과 일심삼관(一心三觀)의 교의로써 국가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선(禪)과 교(敎)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고려의 불교는 선·교 양종의 대립이 심각하였고, 의천은 이러한 고려불교의 폐단을 바로잡아 교단을 정리하고, 정도를 밝혀 올바른 국민사상을 확립시키려고 하였는데, 그러한 근본이념을 천태사상에서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회삼귀일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에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의 차별이 있는 것은 방편으로 설하기 때문이므로. 그 차별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서 그와 같은 설법을 절대의 일승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을 의미하며, 일심삼관이란, 일심(一心)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세 가지 측면에서 관찰하는 관법(觀法)으로서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관(中觀)으로, 공가중(空假中) 삼관이라고도 합니다.

 

공관은 삼라만상이 모두 공무(空無)하므로 한 물건도 실재하는 것이 없다고 관하는 것으로 견사(見思)의 혹(惑)을 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가관은 삼라만상의 어느 한 물건도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상적으로는 분명하게 있는 것을 觀하는 것으로, 진사(塵沙)의 혹(惑)을 끊게 된다는 것이며, 중관은 모든 법이 공도 아니고 유(有)도 아니며, 공이면서 유요, 유이면서 공임을 관하는 중도적 입장의 관법으로서, 이 관법에 의하여 무명(無明)의 惑을 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천은 불교전적을 정비하고, <고려속장경>을 간행하였으며, 송나라에 유학하여 새로운 문화를 수입하였고, 천태종을 세워 교단의 통일과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등 많은 훌륭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1101년(숙종 6) 10월 5일, 문병 온 형왕(兄王)이 숙종에게 "원한 바는 정도를 중흥하려 함인데 병마가 그 뜻을 빼앗았나이다. 바라옵건대 지성으로 불법을 외호하시와 여래께서 국왕, 대신에게 불법을 외호하라 하시던 유훈을 봉행하시오면 죽어도 遺憾(유감)이 없나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나이 47세, 법랍 36세로 입적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신편제종교장총록>3권, <신집원종문류(新集圓宗文類)>22권, <석원사림(釋苑詞林)>250권, 의천의 제자들이 그의 행적과 시 등을 모은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23권과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13권,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3권, <천태사교의주(天台四敎儀註)>3권 등 尨大(방대)한 저술이 있으나 이 저술들이 거의 없어지고 현재는 <신편제종교장총록>3권과 <대각국사문집>, <대각국사외집>의 낙장본, <원종문류>, <석원사림>의 일부, <간정성유식론단과>만이 전하여오고 있습니다.

'고려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왕조실록 52 - 헌종  (0) 2021.07.28
고려왕조실록 51 선종 3  (0) 2021.07.28
고려왕조실록 49 - 선종 1  (0) 2021.07.28
고려왕조실록 48 - 순종  (0) 2021.07.26
고려왕조실록 47 - 문종 3  (0) 2021.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