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49 - 선종 1

이찬조 2021. 7. 28. 07:45

고려왕조실록 49 - 선종 1

* 대각국사 1

 

1083년 10월, 3개월 사이에 아버지와 형을 잃고 경황이 없는 가운데 왕위에 오른 선종은 큰 변화보다는 기존의 인물들과 협조의 체제를 택합니다.

 

전왕들이 정치, 국방, 문화, 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워낙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다져 놓았기 때문에 변화보다는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더 유익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즉위 이듬해인 1084년 정월 보제사의 승려 정쌍 등이 선종에게 승과에 관한 의견을 아뢰었습니다. “아홉 개의 절간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중들을 진사 규정에 준하여 3년에 1차씩 승직에 선발하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이는 곧 승려가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이었습다. 선종은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3년에 한 번씩 승과를 치르도록 하였습니다. 승려들의 청에 의해 이러한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것은 당시 고려사회 전반에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광종 때에도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승과 시험이 있었으나 이는 비정규적이었던데 반해 선종 대에는 이를 3년에 한 번씩의 정규시험으로 격상 시킨 것입니다.

 

승과제의 시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려의 불교는 선종의 적극적인 장려책에 힘입어 많은 발전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이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명 있으니 그가 바로 대각국사 의천입니다.

 

의천은 고려의 천태종(天台宗)을 창종한 고승으로, 성은 왕(王)씨. 이름은 후(煦), 호는 우세(祐世), 시호는 대각국사(大覺國師)로 아버지는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 어머니는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입니다. 문종의 넷째아들로 선종에게는 둘째 동생입니다.

 

의천은 11세에 문종이 왕자들을 불러 "누가 출가하여 복전(福田)이 되겠는냐."는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체없이 출가를 자원하였습니다. 1065년 5월 14일에 경덕국사(景德國師)를 은사로 삼아 출가하여, 영통사(靈通寺)에서 공부하다가 그해 10월 불일사(佛日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학문에 더욱 힘을 기울여 대승과 소승의 경·율·론 삼장(三藏)은 물론, 유교의 전적과 역사서적 및 제자백가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섭렵하지 않은 바가 없었습니다.

 

의천은 송나라로 건너가 구법할 뜻을 여러 번 밝혔으나 왕자의 신분 때문에 거란을 의식한 조정의 반대로 뜻을 이룰 수 없자 어쩔 수 없이 밀항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송나라로 들어가는 배들을 바라보면서 불법(佛法)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주상께서는 죄를 무릅쓰는 신을 부디 용서하시옵소서. 이제 신은 만 번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며 험한 파도에 몸을 맡기옵니다.” 송나라로 밀항하면서 의천이 선종에게 남긴 편지 내용입니다.

 

1085년(선종 2)에 송나라로 유학을 떠난 의천은 유성법사(有誠法師)와 함께 인도불교, 천태종, 화엄종 등 각 종파의 불교이론에 관하여 깊은 연구를 하고 귀국 후, 흥왕사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한편, 송나라의 고승들과 서적, 편지 등을 교환하면서 학문에 더욱 몰두하였습니다. 요나라, 송나라, 일본 등에서 불교서적 4,000 여권을 수집하고 국내의 고서도 모았으며,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이들 경서를 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간행목록으로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3권을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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