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59 - 인종 3

이찬조 2021. 8. 1. 08:02

고려왕조실록 59 - 인종 3

* 이자겸을 처단하라.

 

그런데 뜻하지 않게 신료 이수가 이자겸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아무리 인종이 조서를 내렸다하더라도 신하 된 입장에서 어찌 그럴 수가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이자겸은 마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종에게 조서를 반납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자겸이 왕이 되고자하는 욕망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씨가 왕이 된다는 ‘십팔자도참설(十八子圖讖設,, 十八子를 합하면 李가 됨))“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종을 연경궁으로 옮겨 앉게 하고 여전히 척준경과 짝짝꿍이 되어 정사를 농단하며 권력을 나누어 갖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는 왕이 되겠다고 독심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음식에 독을 넣어 인종을 두 번이나 죽이려 하였지만, 공교롭게도 이자겸의 넷째 딸인 왕비가 이를 알아차리고 방해하는 바람에 인종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이일을 계기로 인종은 왕권의 회복보다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급기야 내시 최사전을 은밀하게 불러 다음과 같이 명을 내립니다.

 

“이자겸이 권력을 농단하며 왕실의 위엄을 땅에 떨어뜨린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척준경으로 하여금 왕실에 충성토록 하라 이르라”

 

최시전이 왕의 조서를 보이자 척준경은 호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권력은 탐하였지만 이자겸처럼 왕위를 넘볼 처지는 아니었고, 당시 이자겸과도 사이가 약간 틀어져 있던 시기였습니다. 인종이 다시 한 번 최사전을 보내 회유하자 척준경은 인종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충성을 맹세합니다.

 

실은 왕실에 대한 충성보다는, 어려울 때는 이자겸과 힘을 합쳐 권력을 지켜냈으나, 세상이 안정되니 날이 갈수록 이자겸과의 사이가 삐꺽거려 가는데다가, 만약에 이자겸이 왕이 되면 자신은 팽 당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이번 기회에 이자겸을 제거해 버리면 자신이 모든 권력을 독점 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겠지요.

 

그러나 권신임을 내세우는 척준경의 횡포와 금나라의 압력등 인종의 왕도는 험난하기만 하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생명을 지켰줬던 왕비들을 역도의 핏줄이라는 공신들의 압력으로 폐출시켜야 하였습니다.

 

문벌귀족과 권신들을 견제하려 노력하던 중 좌정언 정지상이 척준경을 탄핵하는 상소를 기회로 척준경을 귀양 보내면서 개경문벌귀족과 거리가 먼 인물 왕실고문 묘청, 검교소감 백수한, 좌정언 정지상들을 가까이 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서경천도와 칭제 건원등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개경문벌귀족의 영향으로부터 왕실이 벗어남은 물론 왕권을 강화할 수 있는 방편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척준경은 군사를 동원하여 이자겸을 기습하는데 성공하고, 이자겸과 그의 부인을 포박하여 인종 앞에 끌고 나옵니다.

 

그러나 인종은 자신의 장인이자 외할아버지인 이자겸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이자겸을 비롯한 그의 일가와 일파들을 귀양 보내는 선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그러나 중신들은 인종의 비이자 이자겸의 셋째, 넷째 딸들도 사가로 내쫓아 버립니다. 비록 죽음은 면하고 영광으로 유배되었으나 그해 12월 이자겸은 유배지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자겸을 제거하는데 공을 세운 척준경은 추충정국협모동덕위사공신(推忠靖國協謨同德衛社功臣)이라는 긴 훈작을 받고 일등공신에 책봉되어 변함없는 권세를 누리게 되지만 이듬해 3월 정지상의 탄핵을 받고 암타도라는 외딴섬으로 유배되고 맙니다.

 

이제 척준경까지 몰락함으로써 정치를 농단하던 무리들은 모두 정리가 되었고, 인종은 왕권을 되찾았지만 잃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궁궐이 소실되었는가 하면 무수한 인명이 살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하여도 이러한 상처를 보듬으며 왕으로서 결단성이 있는 정치를 펼쳤더라면 이후 전개될 비극은 만들어 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인종은 정치 질서가 문란해지고 문벌귀족들이 분열하여 대립하는 꼴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다가 묘청의 무리가 제기하는 서경 천도론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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