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63 - 의종 2

이찬조 2021. 8. 3. 18:38

고려왕조실록 63 - 의종 2

* 방탕한 왕 왕권회복을 위한 노력

 

그러나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여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또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1148년에 현릉(顯陵: 태조의 능), 창릉(昌陵: 세조의 능) 등을 참배했으며, 1154년 서경에 중흥사(重興寺)를 중창하고, ​1158년에는 백주(白州: 현재 황해도 연백지역)에 별궁(別宮)을 창건해 그 명칭을 친히 중흥(重興)이라 한 것에서도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안들입니다.

 

의종은 평소에 인정(人情)과 태평(太平) 등에 관한 생각과 글을 많이 남겼는데, 당시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왕조의 중흥과 좋은 정치의 실현을 염원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실제 정치면에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지는 못했고, 오히려 왕권 능멸의 풍조와 신변의 위협이라는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부처나 여러 신(神)들에게 의존하거나 각처를 옮겨 다니며 유희와 잡다한 놀이로서 시름을 잊었고 문신들에게는 자기과시를 하였습니다.

 

사실 의종의 시대는 고려왕조를 통틀어 ‘평화 속의 사치’가 가장 두드러졌던 시대였습니다. 성종 이래 이어진 북방민족과의 갈등은 중국이 금-남송 체제로 정리되면서 잠잠해졌고,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도 선왕인 인종 때 묘청의 난이 진압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금나라와 남송의 사신과 무역상들이 어느 때보다 빈번히 고려를 드나들며 온갖 기화요초, 향료, 비단, 장신구 등 사치품들이 벽란도에서 개경으로 끊임없이 넘쳐흘렀습니다. 의종은 이런 사치품을 앞장서서 애용했을 뿐 아니라 궁궐을 새로 짓고 지방을 유람하며 잔치를 벌이는 일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민가를 헐어 대평정자를 짓고, 태자에게 현판을 쓰게 한 뒤 사방에 기화요초를 심었다. 정자 남쪽에 못을 파고 관란정을, 북쪽에는 청자로 덮은 양아정을, 남쪽에는 댓잎으로 꾸민 양화정을 지었다 … 뭇 소인들이 왕의 비위를 맞추느라 민간의 진기한 물건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바치게 했으므로, 길이 그런 물건을 올리는 대열로 메워지다시피 해 백성이 몹시 괴로워했다.” ([고려사] 의종 11년)

 

“한정과 김돈중이 절 북쪽 산의 초목이 죄다 베어져 벌거벗은 상황을 보고, 백성을 동원하여 소나무∙삼나무와 각종 기화요초를 빼곡히 심고 단을 쌓아 임금이 오르게 했다. 모두 단청으로 장식하고 기암괴석을 썼다 … 왕이 또한 물놀이를 보고자 내시 박희준 등이 배 50여 척을 모두 채색비단으로 장식하고는 물놀이를 벌였다. 한 사람이 귀신놀이를 하며 불 뿜기를 보여주던 중 잘못 옮겨 붙어 배 한 척이 불타 버리자, 왕이 손뼉를 치며 크게 웃었다.” ([고려사] 의종 19년)

 

이와 같은 기록을 보더라도 의종은 사치와 향락을 위해 백성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왕이 귀족들이 즐기는 사치품을 모아서 하사하고, 또 재미난 볼거리를 마련함으로써 귀족들의 환심을 사려는 뜻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종 자신이 즐기려는 의도도 컸던 것 같으며, 이러느라 민생은 과도한 세금과 부역으로 허덕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종의 행동에 먼저 제동을 걸고 나선 쪽은 무신이 아니라 문신이었습니다. 왕과 관료의 비리를 탄핵하는 임무를 맡은 대간들이 연일 궁궐 문 앞에 엎드려 사치를 자제하고 민생을 돌볼 것을 호소했고, 일부 대신들도 왕의 행동이 지나치다며 간했지만 의종은 듣는 체 마는 체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문신을 견제하기 위해 두 친위세력을 크게 늘렸는데, 하나는 환관과 근시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정식 관료조직과 동떨어져서 왕의 가까이에 머물며 시중과 호위를 맡는 집단이었으며, 특히 의종은 호위대인 견룡을 크게 늘리고 순검과 지유 역시 확대했습니다.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등도 이때 발탁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는 참 아이러니한 것이네요. 결국은 그들에 의해 쫓겨나고 죽임을 당하게 되고마니--

*지유(指諭:알지, 타이를유): 고려때 오군 등에 딸린 무관직 벼슬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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