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65 - 의종 4

이찬조 2021. 8. 4. 18:39

고려왕조실록 65 - 의종 4

* 유흥에 빠진 임금.

 

의종은 친위 세력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환관과 내시들을 측근으로 불러 정사를 팽개쳐든 채 유흥과 오락에 빠져 있다가, 간관들이 농성하면 요구를 들어 주는척하고, 다시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의종의 처세였습니다.

 

유교적 정치 이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불교를 지나치게 숭상하였으며, 영의를 불러 점을 치게 하는 등 온갖 폐단을 초래한 임금 의종입니다.

 

도대체 의종은 왜 이러한 처신을 한 것일까요. 놀기를 좋아하는 성격도 한 몫 거들기도 하였겠지만 이것이 의종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같습니다. 각종 미신을 조장하거나 놀이로 소일하며 문관들에게 자기 과시를 하는 것 외에는 미약한 권한을 가진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문신 관료들은 자신들이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하려고 민생을 돌보는 것보다는 왕에게 아첨이나 하면서 왕의 주위를 맴도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이처럼 왕에게 아첨이나 하는 간신배들만 그득하다보니, 왕이나 신하나 정사와 국방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작은 일에도 갑론을박하면서 궤변으로 세월을 보내는 문신들의 세상이었고, 반대로 나라를 지키는 무신들은 그 존재가치조차 의미가 없는 시대상황이 된 것입니다.

 

고려는 원래 문반과 무반의 양반 체제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정치와 경제의 특권은 물론 군대의 지휘 통수권까지 문신들에게 내준 채 무신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종 또한 문신들과 어울려 자주 주연을 배풀고 환관과 내시들을 중히 여기면서도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무신들에 대한 대우를 별도로 해 줄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흔히 의종과 문신들이 무신들을 지나치게 천대해서 무신의 난이 벌어졌다고 하지만, 원래는 도리어 왕권 강화를 위해 특별히 강화된 세력이 무신이었던 것이고, 의종은 재위 1년(1147년)에 정중부가 궁궐 문을 무단으로 출입한 일이 적발되어 처벌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이를 불문에 부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운명의 날, 보현원에서 오병수박희를 열었던 까닭도 본래 무신의 노고를 위로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1144년(인종22년) 섣달 그믐날 작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밤에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귀신을 쫓는 나례(儺禮)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임금의 측근 신하들과 호위 병사들도 어울려 즐겼는데, 내시 벼슬을 하던 김돈중이 정중부를 바라보다가 무엇이 못마땅하였는지 갑자기 촛불을 정중부의 얼굴에 들이대는 바람에 보기 좋게 기른 수염이 타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무신들은 이제 한낱 내시들에게 조차 멸시당하는 신세로 전락하여 있었던 것입니다.

 

정중부는 “미친놈에게 수모를 당했다.”고 분기탱천하여 앞뒤를 가리지 않고 김돈중을 늘씬하게 패주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김돈중의 아비인 김부식이 크게 화를 내며 임금에게 아뢰어 정중부를 고문하고자 하였는데, 임금은 정중부를 아끼는 터라 몰래 도망치게 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었습니다.

 

정중부는 당시 39세의 장년으로 호위군의 하급 장교인 대정(隊正)이고, 김돈중은 새파란 젊은 문관이었습니다.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이 과거시험에서 2등을 했는데, 임금이 김부식의 환심을 사려고 1등으로 올려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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