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62 - 의종 1

이찬조 2021. 8. 2. 19:41

고려왕조실록 62 - 의종 1

* 우여곡절 끝에 오른 옥좌.

 

1446년 인종이 숨을 거두자 20세의 의종(毅宗)이 왕위를 이어 받게 됩니다. 인종과 어머니 공예태후 임씨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명은 철(徹), 이름은 현(晛), 자는 일승(日升)으로 1143년(인종12) 태자(太子)가 되었습니다.

 

부왕 인종은 의종을 태자로 책봉하면서 못내 걱정을 떨쳐내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임금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공예왕후 또한 평소 이러한 점을 느끼고 있었던지 맏아들 현 대신에 둘째아들 대령군 왕경을 태자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태자도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왕위에 오른 뒤에 동생 왕경을 이유 없이 미워하며 반목을 일삼게 됩니다.

 

어찌됐든 어머니 공예왕후 임씨의 거듭되는 청을 이기지 못한 인종이 이미 태자로 책봉된 현을 폐하고 왕경을 새로이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정습명이 이를 극구 반대하고 나섭니다. 오랜 기간 간관의 직무에 있으면서 바른말을 서슴치않는 정습명을 인종은 소중히 여기고 있었던지라 그를 태자의 스승으로 삼아 보살피게 하였는데, 그러한 정습명이 태자를 변호하고 나서면서 자신이 끝까지 곁에서 살필 것임을 밝히자 인종은 마음을 바꾸어 태자 교체를 보류하게 됩니다.

 

실제로 인종은 임종 시에 태자를 불러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마땅히 정습명의 말을 잘 듣도록 하여라.”하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그를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정습명을 의종이 그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중용하였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겠지요.

 

의종은 그를 한림학사로 임명하고 추밀원주지사로 올려 중책을 맡깁니다.

 

의종 또한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이상 제대로 된 정치를 펼쳐 보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의종이 즉위할 당시 고려왕실의 권위는 매우 약화되어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여진족이 세력을 확정하면서 새로운 국가 금(金)나라를 세웠는데, 이 금나라가 인종 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 대륙의 지배세력으로 지위를 굳혔고, 자연스럽게 고려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과거 인종 때에 이자겸(李資謙)의 전횡과 반란 등으로 왕권이 실추된 이래, 이를 회복할 겨를도 없이 묘청(妙淸)의 난이 일어나 더욱 더 쇠약해졌고, 묘청의 난으로 인한 서경(西京)세력(勢力)의 몰락은 고려 왕실을 지원하던 유력한 세력기반이 상실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즉위 초부터 개경에 기반을 둔 문신세력들에게 심한 제약을 받았고, 왕위를 엿보는 반역 음모로 인해 항상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재위 중 거동이 잦았던 것도 놀이를 좋아하는 천성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의 절박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천성이 나약하고 섬세하긴 했으나 무능하지는 않았습니다. 격구(擊毬: 말을 타고 채로 공을 치던 경기)와 음률(音律)에 능했으며 시문(詩文)에도 탁월하였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성격과 재능은 어려운 시기의 군주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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