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 74 - 명종 7

이찬조 2021. 8. 9. 07:33

고려왕조실 74 - 명종 7

- 경대승의 집권.

 

앞에서도 설명한 바가 있듯이 강력한 권력의 그늘에는 불법과 무리한 권력의 남용등과 같은 독버섯이 상존하기 마련입니다. 정중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의 부당한 치부와 권력의 남용에 민심은 극도로 들끓었습니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정중부를 쓰러뜨리고 권력을 독차지하고자 야망을 불태우는 젊은 장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경대승(慶大升)입니다.

 

경대승은 청주(淸州 : 충북 청주시) 사람으로 부친 경진(慶珍)은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습니다. 그는 나이 열다섯에 음서로 교위(校尉)에 임명되었고, 여러 차례 승진해 장군이 됩니다. 부친 경진은 성질이 탐욕스럽고 비루해 남들의 땅을 많이 빼앗았는데, 그가 죽자 아들 경대승은 전안(田案 : 量案으로 토지대장)을 모조리 선군(選軍)에 바치고 한 점도 자기 것으로 하지 않자, 사람들이 그의 청렴에 탄복하였습니다.

 

경대승이 일찍이 정중부가 발호하는 것을 분하게 여겨 그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꾸몄으나 중대하고 어려운 일이라 은인자중하고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명종 9년(1179) 경대승이 허승에게,“내가 흉악한 무리들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네가 따라만 준다면 일이 성공할 것이다.”라고 의논하자 허승이 승낙하니 바로 거사에 들어갑니다.

 

장경회(藏經會)가 끝나고 새벽 4경에 허승이 정균의 숙직소로 들어가 그를 죽이고 휘파람을 불자, 경대승이 결사대를 이끌고 왕궁의 담장을 넘어 들어가서 대장군 이경백(李景伯), 지유(指諭) 문공려(文公呂)를 죽인 후 눈에 띄는 사람마다 모조리 다 살해해 버립니다.

 

정중부 등은 변고를 듣고 도망쳐 민가에 숨어 있었으나 모조리 체포되어 목이 잘리고, 수급은 큰 거리에 매달리게 됩니다. 사태가 종결되고 조정의 신료들이 대궐로 나아가 하례하는 자리에서 경대승이, “임금을 시해한 자가 아직 살아있는데 어찌 하례를 받겠는가?” 라고 하니, 이의민(李義旼)이 이 소식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새벽의 급습으로 권력을 쟁취한 경대승은, 다른 무신들이 정중부를 죽인데 대해 반발하여 그를 토벌하겠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대자, 겁이 나 결사대 백 수십 여명을 모아 자기 집에 두고 변란에 대비해 훈련시키면서 이를 도방(都房)이라 불렀습니다. 긴 베개와 큰 이불을 만들어 두고 번갈아 숙직하게 했으며, 어떤 때는 자신이 그들과 같은 이불을 덮고 자면서 성의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경대승은 권력을 장악하고 난 얼마 후 사직하고 사저에 살았지만, 국가의 중대사가 벌어지면 반드시 조정에 나아가 간섭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개경에 강도떼들이 마구 설치며 자신들을 경대승의 도방이라 일컬었는데, 해당 관청에서 체포해 옥에 가두면 경대승이 그때마다 석방하니, 강도들은 약탈을 거리낌 없이 공공연하게 약탈을 자행하니 사회질서가 문란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또한 허승, 김광립 등은 경대승과 같이 공을 세운 것을 내세워, 교만하고 방자하게 행동하면서 몰래 불량배[惡少]를 양성하기도 하고, 세자를 측근에서 모신답시고 세자궁의 뒤 벽 쪽에 기거하면서 밤새도록 노래와 풍악판을 벌이는 등 방약무인하게 굴었습니다. 경대승이 이에 크게 분노하여 허승을 자기 집에 불러다 죽여 버리고, 또 길에서 김광립을 만나자 바로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군사를 동원해 자신을 경호시키면서 왕에게는, “허승 등이 제멋대로 굴면서 신을 죽이려고 할 뿐만 아니라, 반역까지 도모했습니다. 일이 급박해 주상께 아뢸 겨를도 없이 먼저 그들을 죽였습니다.” 라고 보고합니다.

 

왕이 내심 경대승을 꺼리면서도 겉으로는 두터운 은총을 과시하려고 매일 진수성찬과 의복 및 보화를 내려주었으며, 그가 요청하는 것은 그대로 다 들어 주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부했지만, 학식이나 용맹 혹은 지략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경대승이 다 물리치니, 무반들이 다들 그 위세를 두려워해 감히 방자하게 굴지 못하였습니다.

 

명종 13년 (1183년) 7월 경대승은 갑자기 꿈에 정중부가 칼을 잡고 큰 소리로 꾸짖는 꿈을 꾸고 나서 병을 얻어서 죽으니 그 때 나이가 갓 서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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