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70 - 명종 3

이찬조 2021. 8. 9. 07:03

고려왕조실록 70 - 명종 3

* 승려들의 저항

 

명종시대에는 크고 작은 전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시작을 알 린 것이 귀법사 승려들이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불교는 왕실은 물론이고 귀족들과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 강하게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려사회 전체가 불교를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 정권에 의해 자신들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자 불교 특히 교종 세력은 문신 귀족들과 결탁하여 무신정권에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1172년 귀법사의 승려 백여 명이 실력행사에 들어가는데, 이들은 도성 북문으로 침입하여 선유승록 언선을 살해해 버립니다. 이에 이의방이 군사 천여 명을 데리고 나가 승려 수십 명을 죽여 버리자 겁에 질린 승려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의방의 무자비한 진압에 분개한 승려들은 이튿날 다시 중광사, 홍오사, 귀법사, 흥화사 등 여러 절에서 2천여명이 몰려나와 성 동문 밖에 집결하였습니다.

 

이의방은 엄청난 수의 승려들을 보고는 성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이에 기세가 오른 승려들이 성 밖의 민가에 불을 질렀는데 불길은 무섭게 타올라 숭인문까지 태워버립니다. 숭인문이 타면서 길이 뚫리자 돌진하여 이의방 형제를 죽이려하나 이의방이 수하들을 이끌고 승려 백여 명을 죽이며 성 밖으로 몰아내 버립니다. 숫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고 훈련된 군사들과 경전이나 읽던 승려의 싸움은 게임이 안 되는 것이었지요. 이어서 모든 성문을 닫아 걸고 승려들의 출입을 일체 금지하고 한발 더 나아가 승려들의 봉기와 관련된 모든 절들을 불태워 버립니다.

 

이렇게 하여 승려들이 일으킨 난은 진압이 되고 말지만 잔인하고 무자비한 진압 때문에 이의방은 더더욱 민심으로부터 멀어져버립니다.

 

승려들의 봉기에 이어 1173년 8월 의종의 복위를 부르짖으며 김보당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게 되자, 의종은 이의민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문신들이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이의방은 눈도 하나 꿈쩍하지 않고 일어나는 반란들을 잘 막아 내었고, 자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이의방의 몰락을 알리는 사건이 터졌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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