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76 - 명종 9

이찬조 2021. 8. 9. 07:46

고려왕조실록 76 - 명종 9

- 최씨의 손아귀에 들어간 고려.

 

아무튼 이 비둘기 사건이 발단이 되어 최충수와 그의 형 최충헌이 이의민을 처단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고, 이의민은 미타산의 별장에 머물고 있던 중 최충헌 형제의 습격을 받아 1196년 4월에 비참하게 살해되고 맙니다. 기록에 의하면 최충수가 먼저 말을 타고 있는 그를 급습하여 칼을 휘둘렀으나 빗나갔는데 바로 최충헌이 칼을 휘두르면서 덤벼들어 말에서 떨어뜨린 다음, 목을 베어 버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의민을 제거한 최충헌은 이의민 3대 일가를 부하들을 시켜 모조리 참살해 버립니다.

 

이것을 단순히 비둘기 한 마리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최씨들 역시 음서로 벼슬을 할 만큼 권위가 있는 가문이었는데, 이들의 재산을 이의민 일가가 함부로 뺏어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이의민 일족이 얼마나 앞뒤 안 가리고 다녔는지 짐작이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또한 이의민은 본래 천민이었는데, 천민출신들이 귀족출신 무장들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고 다녔으니 귀족출신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던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최충수가 이지영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것도 중대한 시사점으로 비둘기는 이의민과 그 일족을 제거하게 만드는 구실이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고려사에 실린 이의민 열전과 최충헌 열전을 보면 이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에 최충수가 최충헌을 찾아가 이의민을 제거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바로 얼마 뒤에 이의민 일파가 제거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일찍부터 이의민을 제거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신들이 나라를 장악한 의종 임금 시대 이래로 고려 왕실의 위엄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의 삶은 무너져 내렸으며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힘이 있고 어느 정도 지략만 갖추고 있으면 언제고 나라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야욕을 가슴에 품은 자들이 많았고, 그래서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최충헌이 기다리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거사를 단행한 것은 그들의 모의가 발각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의민이 죽고 최충헌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들 역시 모두 정리가 끝나자 고려의 권력은 자연스레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고, 그 누구도 최충헌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는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하지만, 그래도 최충헌은 자신이 성공시킨 거사에 대한 명분을 정당화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명종 앞으로 나아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습니다.

“적신 이의민이 과거 임금을 시해하는 죄를 저지르고 백성들에게 잔학한 피해를 끼쳤으며 왕위를 엿보기까지 했습니다. 신들이 오랫동안 그의 소행을 혐오해 오던 끝에 나라를 위해서 그를 토벌했습니다. 다만 일이 누설될까 우려한 나머지 감히 먼저 아뢰지 못하였으니 죽을 죄를 저질렀습니다.”

 

실권 없는 왕이지만 28년을 왕좌에 있으면서 무력의 힘으로 나라를 지배하는 무신들의 틈바구니에서 숨죽인 세월을 살아온 명종은 이번에도 최충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최충헌의 거사가 나라를 위한 충정의 발로였음을 인정하며 명분을 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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