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82 - 신종 5

이찬조 2021. 8. 12. 19:02

고려왕조실록 82 - 신종 5

- 최충헌과 신종의 죽음.

 

최충헌(崔忠獻, 1149~1219)은 고려의 역사, 그 가운데서도 무신의 정권 독점기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장장 60년의 최씨 정권 기틀을 세운 최충헌은 문신적 자질을 갖춘 무인으로 또한 독재자로서의 기본 요건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17년간을 집권하면서 4명의 왕을 바꿔 치웠고, 동생을 비롯한 수많은 정적을 죽여가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임금 이상의 권력과 사치를 누렸지만, 직접 임금이 되려는 꿈은 꾸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권력을 탐하는 인물이었던 반면, 권력의 마지막 절제도 아는 출중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성공한 쿠데타 무신란 이후, 100여 년간 지속한 무신정권 기간에 무려 60년간 지속한 최씨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던가.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도 대부분이 길어야 10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충헌을 시작으로 60여 년간 권력을 누린 고려 무신정권 최씨 일가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출세와 영달을 꿈꾸다 최씨 정권을 연 최충헌은 1149년(의종 3년)에 고려 수도 개경에서 최원호와 유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본관은 우봉(牛峰), 초명은 난(鸞)이며 충헌은 개명한 이름입니다. 그가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전해지는 이야기는 없고, 단지 부친과 조부, 장인 모두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당대 최고의 무반 가문 출신으로 순탄한 집안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고 전해질 따름입니다.

 

처음에는 최충헌 집안은 무신란에 대해 소극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적극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가문 출신에다 학문적 소양까지 갖춘 최충헌은 까막눈에 오로지 미신만을 신봉했다는 당대의 무신집권자 이의민(李義旼)과 견주어 보면 출발부터가 달랐습니다.

최충헌은 음서에 의해 벼슬길에 나가고 나서, 도필리(刀筆吏)라는 말단 행정직 생활을 하며 문신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우봉 최씨 집안은 아마도 최충헌 대에 이르러 무신에서 문신 가문으로 변화를 꾀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무신의 난은 말단 행정직에만 만족해야 했던 그에게 새로운 변신을 요구한 사건이었습니다. 바야흐로 무관도 출세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명예욕이 남달랐던 최충헌은 무신들의 권력 장악에 자극을 받아 도필리 자리를 버리고 무신으로의 변신을 꾀하며 출세를 꿈꾸게 됩니다.

 

최충헌은 1174년(명종 4년) 조위총의 난을 진압할 때 부원수 기탁성에게 발탁되어 별초도령에 뽑혔고, 이어서 별장직에 오르면서 출세를 보장받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야망에 비해 출세운은 크게 따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의민이 집권하자 출세에 제약을 받아, 이후 20년 동안 승진도 못하고 불우한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10년도 채 못 되어 장군직에 올랐던 경대승과 비교해보면 최충헌은 초창기 관운은 없었던 편이었습니다.

 

정변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그의 지위는 고작 섭장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출신들이 상급자로 군림하는 것을 지켜본 최충헌은 이들과 상당한 갈등을 빚었고, 결국 진주 안찰사직에서 파면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중요한 직책은 거의 맡지 못하고 한직에 머무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십을 바라보던 최충헌이 배척받던 세력을 규합하여 이의민과 그의 추종 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은 1196년(명종 26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자신의 아우 최충수의 비둘기를 강탈한 것을 구실삼아 이의민을 제거하는 쿠데타를 일으켜 드디어 부활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어서 친동생을 비롯한 자신에게 불만을 갖는 모든 동업자들을 제거하고는, 17년간의 일인독재의 체제와 60여 년간의 최씨 일가에 의한 정권 독점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신종의 치세는 최충헌의 독재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대로, 신종은 왕위에 있었지만 실권은 전혀 없었던 허수아비 국왕이었습니다. 또한 최충헌의 독재에 반발한 민란이 각지에서 일어나 고려사회는 큰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으며 특히 그 유명한 “만적의 난”이 일어난 것도 바로 신종시대. 이러한 상황에서 신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고려를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있었던 사람은 최충헌으로 군사, 행정, 인사 등 모든 분야에 대한 결정권을 틀어쥐고 있었고 왕은 최충헌이 결정한 사항을알려 오면 그저 고개만 끄덕여 주면 될 뿐이었습니다.

 

오십이 넘은 노쇠한 나이에 왕위에 올라 최충헌의 기세에 눌려 그의 꼭두각시 놀음이나 하던 신종은 외아들 영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며칠 지나지 않은 1204년 정월 정축일에 세상을 뜨니 재위 연수는 6년 4개월이요, 향년 61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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