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80 - 신종 3

이찬조 2021. 8. 11. 08:15

고려왕조실록 80 - 신종 3

- 형제의 충돌

 

동생 충수가 다음날 새벽에 자신의 수하들을 치러 온다는 말이 최충헌에게 들어가자 최충헌은 수하인 박진재, 김약진, 노석숭을 불러 경위를 설명하니, 최충헌의 외종질인 박진재가 “공의 형제는 두 분 다 제 외삼촌이니 누구를 가까이 하고 누구를 멀리하겠습니까? 그러나 국가의 안위가 바로 이 일에 달렸으니, 동생을 도와서 역적이 되는 것보다는 형을 도와 순리대로 행동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한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하는 법이라고 했으니 저는 당연히 김약진, 노석숭 등과 함께 각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돕겠습니다.”하고 최충헌의 편에 서겠다고 하자 최충헌이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자정 무렵에 최충헌이 군사 천 여 명을 거느리고 고달고개를 넘어 광화문(廣化門)까지 와서 왕에게 반란사실을 고하자, 왕이 크게 놀라서 즉시 성문을 열게 하여 이들을 맞아들이고는 구정(毬庭)에 진을 치게 하는 한편 무기고의 병장기를 내어 금군(禁軍)에게 나누어주고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각 위(衛)의 장군들도 군사를 거느리고 앞을 다투어 궁궐에 도착하니, 최충수가 이 소식을 듣자 겁을 집어먹고 수하들에게, “동생이 형을 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난 짓이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구정으로 들어가서 형을 만나 뵙고 용서를 빌고자 하니 너희들은 각각 도망하여 숨도록 하라.”고 수하들에게 해산을 명합니다.

 

그러나 장군 오숙비(吳淑庇), 준존심(俊存深), 박정부(朴挺夫) 등이, “저희들이 공의 문객이 된 것은 공께서 세상을 덮을만한 기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도리어 이처럼 겁을 내어 나약해지니, 이는 저희들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한번 싸워서 승패를 결정짓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나섰습니다. 

 

한참을 고심하고 망설인 끝에 최충수가 어쩔 수 없이 이를 허락하자, 여명에 군사 1천여 명을 거느리고 십자가(十字街)에 진을 치고는, “죽을힘을 다해 싸워라. 저 놈들을 죽인 사람에게는 죽은 자가 가졌던 벼슬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장수들이 모두 최충헌 편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은 최충수 편의 군사들은 원군이 부족함을 알아차리고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충헌은 광화문을 나와 시가지를 향해 내려오고, 최충수는 광화문을 향해 올라오다가 흥국사(興國寺) 남쪽에서 서로 부딪쳐 교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최충헌의 화살부대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한 최충수의 반란군은 마침내 참패하고 도망치고 맙니다. 

 

최충수는, “오늘의 패배는 하늘의 뜻이다. 형이 임진강 이북을 차지한다면 나는 임진강 이남을 가지겠다.”고 하면서 수하들과 함께 성문을 벗어나 장단(長湍 : 개성직할시 장풍군)을 건너, 파평현(坡平縣 : 경기도 파주시)의 금강사(金剛寺)까지 도망을 하지만 추격군이 그를 잡아 참수한 후 머리를 개경으로 보냈습니다.

 

동생의 수급을 본 최충헌이 통곡하면서 “나는 생포하려 했는데 무엇이 급하다고 죽여 버렸는가?” 하고 꾸짖고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왕이 최충헌의 공을 기려 해당 관청에 분부해 초상을 그려 공신각에 붙이게 하고 그 부모의 작호를 올려 주었으며, 지주사(知奏事)·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로 승진시켜 줍니다. 친동생을 죽인 대가로 또 출세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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