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도 여행(2008.10.03, 금요일)
1. 이동코스
통영-연화도(본촌)-연화봉-연화사-본촌-통영
2. 여행기
통영에서 6시50분배를 타기 위하여 6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여 8,300원을 주고 매표한다. 지난번 소매물도는 왕복 표였는데 여기는 편도만 이용한다. 지연되어 6시55분에 출발했다. 개천절(휴일)이라 손님이 엄청 많아 앉을 자리가 거의 없었다. 여객선은 1층은 주차장, 2층은 여객실로 앞쪽으로 1/4은 마루로 되어 있고 뒤쪽은 의자로 되어있었는데 의자가 빈 좌석이 없어 앉을 데가 있나 싶어 앞으로 갔더니 장거리 손님들이 피로를 씻기 위해 누워서 주무신다. 좌석이 없어 되돌아 나오는데 맨 뒤에 빈자리가 있어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잡았다.
연화도까지는 1시간이 소요되었다. 08:00에 본촌 선착장에 내려 되돌아가는 배표를 구하려 했으나 예매는 하지 않는단다.
8시 15분경에 갈바를 알지 못하여 지나는 분에게 여쭈었더니 “등산화 신었으면 등산코스라야지” 하시면서 등산로 입구를 안내하여 주신다. 그 많은 관광객중 등산로는 내가 선두였다. 모두가 평탄한 차도로 하여 올라가고 어떤 나이 많은 분과 젊은 중년여성 등 우리만 외따로 가게 된다. 등산로 입구에서 오르막은 경사가 심해 약간 아니다. 오르는 좌우편에는 고구마 밭이 있었는데 고구마가 꽃이 피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는 고구마는 꽃이 피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처음에는 고구마 밭에 나팔꽃이 핀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는데 고구마 꽃이 분명했다. 또한 염소를 방목하여 몇 마리가 우리 일행을 보고 반갑게 맞아 준다. 가는 도중에 아침식사로 김밥을 먹고 차분히 쉬었다가 올라가는데 거미줄이 너무 많아 나뭇가지로 휘저으면서 가도 얼굴, 손등에 거미줄이 엉긴다.
연화봉 정상에 이르니 215m로 용머리 해안이 훤히 보인다.
그리고 사명대사께서 수도한 토굴을 찾아보았는데 막아두고 있다. 연화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차량이 갈 수 있는 도로를 닦고 있었고, 5층 석탑 쪽으로 내려와서 암자를 지나 왔다. 조금더 내려오니 코스모스를 길 양쪽으로 잘 가꾸어 두었다. 그리고 연화사에 이르러 절 구경을 하고 왔다. 연화사 입구에서 좌측 길로 가면 동두라고 하는데 다리가 좋지 않아 포기하고 선착장에 가서 쉬기로 했다.
본촌마을로 들어서는데 참깨, 고추말리기,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고구마를 심어 줄기를 많이 말려 두고 있었고, 연화도 전체인구는 217명으로 모르는 분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은 대문은 보이지 않았고, 원량초등학교 연화분교 앞에 천막을 쳐 두고 있었다. 마을 어른 두 분과 등산객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우리도 좀 쉬어가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신다.
뒷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등산객 중 남자분이 젊은이 어디서 왔소? 하고 물어본다. 내가 그리 젊어보입니까? 했더니 그렇단다. 이야기 중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면 막걸리 정도는 한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 부인보고 막걸리 좀 받아 오라고 한다. 얼마 후 막걸리와 파전 2판, 열무김치 등 골고루 가지고 왔다. 나중에 알았는데 막걸리와 파전을 사왔고 나머지는 할머니 댁에서 김치를 준비해 오셨다고 한다. 맛있게 나누어 먹고 나니 할머니께서 연화도 문화생활, 경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주신다. 또한 연화도 고구마 맛보라며 고구마를 주신다. 조금 더 쉬고 있는데 단감을 수확해 오는 분이 단감을 몇 개 놓고 가서 맛을 보았는데 아직 맛이 덜 들었다. 할머니는 과거 이곳으로 시집와서 도망을 가지 못했던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연화도는 아주 부자들이 많았다. 가두리 양식장을 하는데 한 가구당 몇 억씩 된단다. 12시 배로 들어온 손님들이 우리 바로 옆집에 묵게 되나본데 어장에서 고기를 잡아왔는데 보니까 돔과 물방어라는데 먹음직스럽다. 주인 남자는 칼부터 갈아서 아주 쉽게 포를 뜨고 고기를 요리할 준비를 한다. 연화도는 공기 맑고 너무 정갈스런 정취를 느낀다.
이 본촌에는 목욕탕은 없었다. 각 가정집마다 목욕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기 집에 가서 목욕을 하고 가라고 하면서..... 13시가 되어서 선착장으로 나오는데 무슨 기계를 돌려 작은 물고기 얼린 것을 잘게 썰고 있었다. 나는 어묵을 만들기 위해 분쇄하는가 생각하고 물었더니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 양식이란다. 고기의 종류는 고등어, 꽁치 등 이었다. 혹 산 잡어도 있다고 한다. 값이 싸게 먹히니 그런 사료를 쓴다고 한다. 13:20분 통영나오니 14:20분이 약간 지났다. 통영에 나와서 택시로 주차장으로 이동하는데 택시를 탔는데 이야기 중에 낚시를 좋아하신다는 사천 곤양 분 기사을 만나 통영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신다.
태풍 매미때 가두리가 망가져 정부의 지원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며, 또한 가두리 양식장 고기는 멀리 가지 않고 밥 주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등 그리하여 그 당시 낚시꾼들을 불러 모아 한 마리당 50원씩 쳐서 되돌려 주었다는 이야기며 요즘 택시 일보다 낚시가 훨씬 수입이 좋다는 등 ..... 돔 한마리 25-30Cm 되면 한 마리당 32,000원에 판다고 한다. 몇일 전에는 30수는 하였다고 하니 하루 100만원 수입이다. 내가 귀를 의심해 봤다. 낚시가 좋아 이곳으로 와서 27년간 살아왔다고 하면서...... 그 분들은 그 고기를 사서 다음날 아침 경매에 내 놓는다고 한다. 자연산과 양식 구분도 설명해 주시는데 고기를 놓고 보아야지 설명만으로는 어려웠다. 차이는 자연산은 빛이 좋고, 무늬가 반듯한데 비해 양식은 아니다고 한다. 일본산 양식고기는 우리 자연산 보다 맛있다고 하니....일본산 양식고기는 자연산과 구분도 어렵다고 한다.
참고로 연화도의 전설을 올려둔다
연화도는 연산군의 억불정책으로 쫓겨 낙도를 찾아 은신한 연화도사가 제자 3명과 함께 연화봉 암자에서 전래석을 모셔두고 도를 닦으면서 살아왔다. 그 후 연화도사가 타계하고 제자들과 섬 주민들이 연화도사의 유언에 따라 수장을 하니 도사의 몸이 한 송이 연꽃으로 승화하였다고 하여 연화도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제자들이 떠난 후 도사의 불승을 계승하기 위하여 사명대사가 연화도에 들어와 뒤를 이어 수도했다고 한다.
대사를 찾아 헤매던 대사의 누이(보운), 약혼녀(보련), 대사를 짝사랑하다 수도승이 된 보월, 이 세 비구니는 대사가 떠난 후에도 이 섬에서 도를 닦아 득도하여 만사형통했다고 하며 이 세 비구니들을 자운선사라 한다.
이들은 후에 임진왜란이 발발할 것을 예측하고 이순신 장군을 만나 거북선 건조법, 해상지리법, 천풍 기상법 등을 우리 수군에게 대책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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