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42)> 중종 1- 연산의 죽음, 중종 등극

이찬조 2021. 4. 1. 20:28

<조선왕조실록(42)> 중종 1
- 연산의 죽음, 중종 등극

박원종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부인인 박씨의 동생으로서, 성희안, 신윤무 등과 반정을 논의한 후 조정 대신들의 의견을 하나씩 물었는데, 조정 대신들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반정계획에 동참을 하였습니다. 올 것이 온 것으로 판단한 것이지요

비교적 연산으로부터 후한 대우를 받았던 박원종이 왜 반정을 시도했는지, 우국충정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야사에는 연산이 박원종의 누이인 월산군 부인을 겁탈했다고 하나, 월산군 부인의 나이를 보나 그즈음 <연산군일기>의 내용을 보나, 이런 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쨌든 박원종은 신수근, 임사홍 등 극소수의 연산 측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하들의 호응을 얻어 경복궁에 무혈입성하였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시종이나 내관들, 갑사들 모두 도망가 버린 궁궐에는 연산만이 남아 있었고, 연산은 옥새를 내어 놓으라는 반정군에게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순순히 옥새를 내 놓고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합니다.

박원종은 곧바로 대비전을 찾아 연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성대군이 이 날로 즉위하니 이 사람이 곧 중종입니다.

이후 연산의 여인 장녹수는 반정군의 칼을 맞은 후, 분노한 군중으로부터 돌을 맞아 순식간에 돌무덤이 만들어졌으며, 연산의 아들들은 각기 따로 유배되었다가 곧 사사되었고, 연산 역시 군으로 강등되어 강화도 교동에 유배 되었다가 두 달 만에 역질로 죽고 말았습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자기 세력도 없이 오직 피바람만으로 절대권력을 향해 질주했던 최악의 군주 조선 10대 왕 연산, 20세에 왕위에 올라 12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피바람으로 세운 절대권력을 오로지 자기의 향락에만 사용했기에 사후 묘호를 받지 못함은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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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종 등은 연산의 배다른 동생 진성대군(13세)을 왕위에 옹립하고 실권을 거머쥔 채 모든 것을 연산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산 치하에서 연산에 붙어 영화를 누린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이는 박원종 등 세력 등 상당수가 그런 자들이기도 했고, 또 다른 반정을 예방하기 위해 적을 만들지 않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박원종 등은 대부분의 신하들을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임명하고, 아울러 중종의 부인인 중전을 연산의 측근인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폐비시켜버렸습니다.

연산의 치하에서 목숨을 겨우 부지하느라 노심초사했고, 이제 연산도 죽고 본인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박원종 등의 무시무시한 눈길에 어깨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연약한 왕 중종, 어찌되었든 이제 1506년의 조선은 11대 왕 중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권력이라는 것이 결국은 뜬구름과 같은것을~~
정점에 선다는건 끝도 보인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