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47)> 중종 6 - 조광조의 죽음

이찬조 2021. 4. 6. 05:03

<조선왕조실록(47)> 중종 6 - 조광조의 죽음

조광조는 임금과 대면할 기회 한 번 갖지 못한 채 그대로 유배 길에 올랐습니다.

조광조는 오로지 근본에 힘쓰고 원칙과 정도만  걸어온 사람으로서, 반듯하고 사심이 없었으며 온화한 성품에 인재라면 천민이라도 등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누구라도 공부하고 수양하면 성인군자가 될 수 있었다고 믿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임금을 끝없이 계도하여 군자가 이끄는 나라를 만들고자 성심을 다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조광조는 현실정치의 냉엄함을 잘 알지 못한 치명적 실수, 군왕제 하에서 신하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 중종의 개인적 자질 부족 등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데, 쪼다 중종이 복을 찼네)여러 이유로 그 꿈을 접은 채 정치 개혁의 길에 들어선지 4년 만에 유배지에서 사사당하니, 그의 나이 겨우 38세였습니다. 그래서 가수 조광조의 '연인이여' 가사중에 "(중종)눈에서 멀어지면 (중종)마음마저 멀어지는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하나요~"가 히트를 친건 아니겠지요~

중종은 조광조를 아들과 같이 아끼다가 느닷없이 그와 그를 따르는 무수한 신료들과 선비들을 납득할 만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은 채 모두 죽이니, 오죽하면 사관들조차 그 임금이 그 임금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취지의 촌평을 하였을까요

암튼 기묘사화와 함께 조광조와 그의 개혁동지들은 모두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살아남은 정국공신들은 끝없이 자기들의 욕심을 채워 나갔으며, 그에 따라 백성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민심은 늘 흉흉하여 각종 고변과 익명서가 난무하였으며, 임금에게 직언해야 할 대간마저 건강성을 잃고 권력을 쫒으니, 결국 조광조의 죽음은 개혁의 실패였고, 곧 중종의 실패였습니다.

조광조가 죽고 난 후 조정은 남곤이 제일 실력자가 되어 좌지우지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기존의 훈구파와는 다른 이질적인 인물이 급성장하고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김안로입니다.

김안로는 똑똑하고 이빨이 세고 매사에 해결책을 잘 제시해서 차기 또는 차차기를 이끌 인물로 주목을 받았고, 급기야 자기 아들을 중종의 딸과 결혼시킴으로써 중종의 총애까지 받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였습니다.

남곤은 김안로를 위험인물로 보고 김안로를 소인배로 몰아 귀향을 보내버렸으나, 그도 더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권력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남곤은 죽으면서 조광조를 죽도록 한 것을 후회하고 자식들에게 자신의 시호를 청하지도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도록 하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니 다행이라 할까요

중종, 인종, 명종 시대는 조광조의 등장과 퇴조, 김안로, 문정왕후, 윤원형, 윤임 등의 피 터지는 권력싸움이 벌어지던 시대인데 (“여인천하”의 소재), 그러한 권력싸움의 정점이 눈앞입니다.

20여년 전 (2001~2002년) 전인화 강수연 주연의 "여인 천하" 참 재미 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