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48)> 중종 7 - 중종의 죽음
남곤이 죽고 며칠 후인 세자의 생일날 해괴한 일이 궁궐에서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꼬리가 반쯤 잘리고 사지가 불로 지져진 쥐가 동궁 숙소 근방에서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세자(13세)는 쥐띠였습니다. 이 사건을 “작서의 변(灼鼠의 變)”이라 합니다.
조정에서는 이 일이 누군가 세자를 저주하여 벌인 일로 보고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대왕대비가 당시 세도를 부리던 경빈 박씨(박원종의 수양 딸)를 범인으로 지목함으로써 별다른 증거도 없이 경빈 박씨는 그 아들인 복성군과 함께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음모와 모함의 달인인 문정왕후와 김안로가 있었는데, 이 중 누군가 벌인 일을 비교적 순진한 경빈 박씨가 뒤집어 쓴 것입니다.
한편, 귀양 가 있던 김안로는 남곤의 죽음과 작서의 변, 그리고 새로운 후원자를 원하는 중종의 뜻에 따라 조정으로 복귀했고, 타고난 재주를 발휘해 중종의 신임을 얻은 후 곧 조종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김안로는 심정 등 반대파들을 누명을 씌워 모두 사사하고, 새로운 저주 사건을 만들어 귀양 가 있는 경빈 박씨와 그 아들 복성군까지 사사해 버리는 등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이러한 김안로에게도 신경이 쓰이는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이는 중종의 세 번째 부인 문정왕후(전인화)와 그의 친동생들인 윤원로, 윤원형(이덕화)였습니다.
김안로는 문정왕후의 야심이 두려운 나머지 문정을 폐위하고 윤원형 등을 해치우려다 자식의 혼인 잔치를 벌이던 중 체포되어 사사되고 맙니다(작서의 변이 경빈 박씨가 아닌 김안로와 그의 자식, 며느리가 일으킨 것으로 밝혀짐)
중종은 어린 시절,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던 연산이 대신들에 의해 끌려 내려가는 것을 직접 목도한 사람으로서, 평생을 왕권 유지를 위해 왕 노릇을 했고(왕노릇을 위한 왕노릇에 의한 왕노릇~~ ) 이를 위해 항상 강력한 후원자를 두었습니다.
다만, 그 후원자가 지나치게 컸다 싶으면 다른 신하들과 모의해 그 후원자를 가차 없이 제거하는 방법이 중종의 전매특허 (중종의 용인술은 한마디로 '以夷制夷') 였고 이 방법으로 중종은 39년 왕위를 지킨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왕위를 지키면서 업적이 없다니~ 그러기도 쉽지 않을듯~)
중종은 박원종 그늘 뒤에서 초기 시절을 보냈고, 조광조에게 힘을 몰아주면서 왕위를 보존하다가 조광조를 내쳤으며, 다시 김안로에게 힘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왕위를 지키다가 다시 김안로를 내쳤는데, 이 때 죽은 사람이 오히려 연산 때보다 많았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중종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왕위를 지킨 것 외에 백성을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이 재위 39년만인 1544년 향년 57세에 병으로 죽으니, 조선의 백성이 참으로 불쌍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실록(50)> 인종 명종- 인종독살설 그리고 명종 즉위 (0) | 2021.04.06 |
---|---|
<조선왕조실록(49)> 인종- 인종 즉위와 끝없는 권력투쟁 (0) | 2021.04.06 |
<조선왕조실록(47)> 중종 6 - 조광조의 죽음 (0) | 2021.04.06 |
<조선왕조실록(46)> 중종 5- 기묘사화(己卯士禍)(2) (0) | 2021.04.06 |
<조선왕조실록(45)> 중종 4- 기묘사화(己卯士禍)(1) (0) | 2021.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