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49)> 인종
- 인종 즉위와 끝없는 권력투쟁
중종의 뒤를 이은 조선 제12대 왕은 인종입니다. 인종은 중종의 정비인 장경왕후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이듬해 장경왕후가 죽어 궐 밖에 재상가에서 성장하였는데, 그 총명함에 신료들이 모두 탄복할 지경이었습니다.
인종은 관례보다 빠른 6세의 나이에 세자에 책봉 되었고 커가면서 이상적인 군주 상에 가까워진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세자를 둘러싼 주위 환경은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즉, 중종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경빈 박씨(도지원)의 소생인 복성군이 있었고, 새로 중전이 된 문정왕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종은 자기의 왕위 보존에만 관심이 있을 뿐 대승적 견지에서의 국가관이라고는 애초에 없었으니, 인종은 말만 세자일 뿐 그 앞날은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게 왕이라고 앉자 있으니 선조같은게 튀나와 나라를 절단내고 맙니다.
이러한 환경에 걸맞게 세자(인종)의 어린 시절엔 전회에 본 작서의 변(이로 인해 경빈 박씨와 복성군 사사, 그 후 김안로 사사) 등 해괴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한편, 문정왕후는 왕비에 책봉된 지 무려 17년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김안로는 문정왕후의 야심을 우려해 중전을 폐위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여 사약을 받았으며, 이에 비례하여 문정왕후의 힘과 야심은 더욱 커지고, 세자의 입지는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김안로가 죽고 난 이즈음 정국은 세자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한 세자의 외삼촌 윤임과 문정왕후의 친동생인 윤원형이 대립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전자를 대윤(大尹), 후자를 소윤 (小尹)이라 불렀습니다. 아재비 조카끼리 지랄들하고 있습니다.
세자의 나이 서른이 되도록 후사가 없자 소윤 측의 야심은 더욱 불타올랐습니다.
문정왕후는 예전 연속극
여인천하에서처럼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 야심을 갖고 세력을 불려나갔고, 그 전면엔 동생 윤원형이 있었습니다.
중종 38년에는 동궁 저에 큰 불이 났는데, 야사에는 이 불이 소윤 측에서 세자를 제거하기 위해 낸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자에 대한 위해 시도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소윤 측은 세자를 제거하지 못했고, 중종이 죽은 후 세자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그 꿈도 일단 깨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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