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53)> 선조 1 - 동서분당(東西分黨)
명종이 34세의 나이에 죽자 중종의 서자인 덕흥군의 3남이 13세에 왕위에 오르니 바로 선조입니다. 서자도 아닌 서손이 임금이 된 유일한 사례입니다.
선조가 어린 관계로 대비인 인순황후 심씨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문정왕후를 반면교사로 삼았는지 달랑 7개월 만에 섭정을 거두었고, 선조는 매우 어린 나이에 친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조 시대에는 초기부터 사림(士林)이 크게 세를 이루어 조정에 등장하였습니다. 고봉 기대승, 퇴계 이황, 이이 등이 그들로서, 높은 학식을 바탕으로 선조에게 여러 가지 상소를 하는 등 조정을 좌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는 현재의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백성의 실제적 삶과 별 상관도 없고 구체적 대책도 없는 실로 쓸데없는 논쟁에 불과하다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정신세계도 좋지만, 백성은 굶어 죽고 국력은 바닥을 치고 있는데, 이기일원론이니 사단칠정론이니 여기에 목숨을 걸고 있는 꼴이 영 재수가 없습니다. 곧 조선 백성 태반이 죽어 나자빠지는 변란이 일어나게 되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마당에, 급기야 조선 정치가 붕당정치로 흐르니, 그 시초가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리는 동서분당(東西分黨)입니다.
선조 7년 인사권을 가진 요직 중 요직인 ‘이조 정랑’ 자리가 비었는데, 젊은 사류 중 명망이 높은 김효원이 추천되었으나, 심의겸이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김효원은 결국 이조정랑이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듬해에 후임자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거론되었고, 김효원은 보란 듯이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이 일을 두고, 김효원을 지지 하는 측과 심의겸을 지지하는 측이 적대적 방향으로 대립하게 되었는데, 김효원이 동쪽인 건천방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동인이라 하고, 심의겸이 서쪽인 정릉동에 있다고 해서 서인이라 칭하였습니다.
사림은 사화를 겪으면서 풍비박산이 난 후 어렵게 조정 권력을 장악했으나, 이렇게 이해관계에 따라 붕당을 이루게 되었고, 이러한 붕당은 이후의 조선 정치의 기준이자 큰 장애가 되고 맙니다.
"난 고귀한 정신을 추구하는 양반이야" 하고 외치고 백성은 나몰라라 하고 있었던 시절~~
배움은 써먹으려고 배우는건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소모전만 했던 것~
당리당략에 안 맞으면 일단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지랄하는~
이러한 시기, 그나마 인물이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등장하니, 이 사람이 율곡 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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