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54)> 선조 2 - 율곡 이이

이찬조 2021. 4. 8. 19:49

<조선왕조실록(54)> 선조 2 - 율곡 이이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강릉에서 태어난 이이는 말보다 글을 먼저 익혔고 세 살에 시를 지었으며 일곱 살에 경서를 섭렵하기 시작했고 열세 살에 진사시에 합격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고 합니다. (누구는 열세살에 담배를 배웠는데) 

효자인 이이는 어머니이자 스승인 사임당 신씨가 죽자 인생에 회의를 느껴 금강산으로 들어가 1년 동안 불교를 공부했고, 하산해 성리학에 전념하여 20대에 이미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이어서 이이는 명종 19년에 대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선 뒤, 선조 1년에 이르러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사회개혁안에 대해 논한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써서 선조에게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이의 학문적 명성과 됨됨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나, 실상 이이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즉, 당시 사림은 서경덕, 이황, 조식 등 자신들의 스승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그들 대로의 학파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이는 그 어느 누구로부터 배운 것도 아닌 독학파인데다 서경덕, 이황, 조식을 비판하기까지 하였기에 사림과 신료들 간에 이른바 왕따를 당하기도 한 모양입니다.
이이는 동서분당의 시대에 사실상 홀로 중립을 지키며 동서 간의 화평을 위해 고군분투했고, 동서의 강경파 이발과 정철을 불러 중재를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얼마간의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수면 아래에서는 서로 간의 적대감이 계속 자라고 있었습니다. 

한편, 임금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고 믿고 의지할 정치 세력도 없이 임금 노릇을 하게 된 선조,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 사림들이 조정에 가득 찬 가운데 자칫하면 신하들에게 휘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조가 누구입니까. 어린 나이에도 전 회에서 본 것과 같은 기지를 발휘해 두 형을 제치고 옥좌를 차지한 인물답게, 조선시대를 통 털어서 가장 얍삽하고 가장 비겁한 임금답게, 붕당 상황을 방관, 조장하고, 더 나아가 이를 이용해 왕권을 확립해 나가는 재주를 보였습니다. 

선조는 어느 편에도 있지 않은 이이를 이용해 세가 높아지는 동인을 견제하고자 마음먹고, 이이를 중용해 국가의 주요 대사를 맡겼는데, 그 능력이나 마음가짐에 선조도 반했는지 이이가 사직상소를 올리고 물러나 앉았을 때에는 엄청난 애정과 신뢰를 담은 비답을 내리기도 했으니, 이이가 인물은 인물이었나 봅니다. 

이이는 모처럼 조정의 주요 직책을 두루 맡아 국가구조개혁, 공물. 군제, 민생 등의 개혁적 일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그럴듯한 성과도 나오기 전인 고작 1년 남짓 만에 이를 시기하는 신하들의 탄핵과 선조의 변심으로 사직을 당하고, 곧 세상을 뜨니, 그의 나이 고작 49세였습니다. 

이이는 17년을 재조와 재야에서 한 결 같이 경장과 동서간 화해를 외쳤지만,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동인 서인 두 붕당은 새로운 차원의 격렬한 대립으로 치닫게 되니, 이게 탁상공론의 달인들인 선비들 집단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나 봅니다. 

이래저래 조선은 비극의 나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천재는 왜 끝이 별로일까요?
본인은 정직하고, 참하게 살다가서 후회 없는 것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