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51)> 명종 1- 문정왕후 그리고 을사사화(乙巳士禍)

이찬조 2021. 4. 6. 23:04

<조선왕조실록(51)> 명종 1
- 문정왕후 그리고 을사사화(乙巳士禍)

문정왕후(대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조정의 실권은 윤임을 필두로 한 대윤에서 문정의 동생인 윤원로, 윤원형을 필두로 하는 소윤으로 넘어갔습니다. 아재비와 조카싸움에서 조카 승~

문정대비의 세력을 배경으로 한 소윤 측 윤원형은 그 측근인 임백령 등을 동원하여 대윤 측의 대표 윤임이 그의 조카인 봉성군에게 왕위를 옮기도록 획책하였다고 무고함으로써, 윤임·유관·유인숙 등 무수한 신료와 선비들을 사사하니 이것이 바로 을사사화입니다.

을사사화는 표면적으로는 윤씨 외척간의 싸움이었으나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공격으로서,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이후 약 50년간 신료와 선비들이 대규모로 옥사한 사화는 이로써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백성의 평안은 뒷전으로 미룬채 50년간 지랄들을 했어요.

※ 4대사화 : 무오사화, 갑자사화(이상, 연산군), 기묘사화(중종), 을사사화(명종)

사림파는 4차례의 사화를 통해 큰 피해를 입었고, 후에 서원과 향약으로 선조 때 다시 중앙정권을 장악합니다. 병이다 병~

아무튼 이러한 을사사화 이래 윤원형 일파인 소윤은 수년간 반대파 숙청을 위한 음모를 계속하였는데, 이 때까지 죽은 유력 인사들만 해도 100명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은 일의 총감독은 당연히 문정왕후였습니다. 문정은 죽는 날까지 국정을 장악하고 철혈정치를 펼치니, 호불호를 떠나 실로 대단한 여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정왕후를 야사가 표독스러운 여인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정사인 실록에서도 야사 못지않게 평가를 하는 것은 다소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생각컨대, 이는 문정이 사화를 통해 사림을 탄압함으로써 당대 유학자들의 공공의 적이 된 점, 사관은 모두 유학자였던 점, 문정이 사림을 사랑했던 인종을 배척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점, 그리고 유학자들이 결사반대하는 불교를 부흥시킨 점(도첩제와 승과제도 부활) 등이 그 원인이 될 것이고, 여기에 “여자”라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람을 죽이기에 힘쓰니 인재는 숨고, 간신배만 우글대는 세상

중종 인종 명종 시대의 사화~~ 이런 시간동안 나라가 한 없이 약해지고, 이어지는 사림이 붕당정치를 하면서 국력이 한 없이 약해지고~

반면에 일본은 통일이 되면서
강력한 군대가 할 일이 없어지고~
이러니 남아도는 기운을 조선에서 쓰자며 지랄지랄들을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