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61)> 선조 9 - 북으로 북으로

이찬조 2021. 4. 13. 21:18

<조선왕조실록(61)> 선조 9 - 북으로 북으로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도망쳐 온 후, 한양 방어를 도원수 김명원, 유도대장 이양원에 맡기고 부원수 신각에게 한강 방어를 맡겼습니다.

한강 북단에 진을 친 도원수 김명원은 한강 남단의 일본군이 헤엄쳐 강을 건너는 자세를 잡자, 겁을 집어 먹고 병사들에게 무기를 버리게 하고는 자신은 백성의 옷으로 갈아입고 임진강 방면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이런겁쟁이, 비겁자를 도원수에 앉히다니 선조가 망조야

부원수 신각은 양주 방면으로 후퇴한 후 왜군이 무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약탈을 다닌다는 정보를 듣고 해유령에 매복했다가, 약탈하고 돌아가는 왜군 수십 명을 발견하고 이들의 목을 베었는데, 이것이 작지만 개전 이래 조선 육군의 최초 승리입니다.

신각은 조정에 70 수급과 승전보를 보냈는데, 곧 선정관이 내려와 상을 주기는커녕 바로 신각의 목을 베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도원수 김명원이 “신각이 말을 듣지 않아 패배하였다”는 허위보고를 함으로써 선조가 대노하였기 때문입니다.

선조는 뒤늦게 신각의 참수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그럼에도 김명원에게 죄를 묻기는커녕, 장수가 부족하다는 이유(이런놈도 장수라고 개가 해도 잘하겠다)로 그에게 그대로 임진강 방어를 맡겼습니다.
어째 근대사에서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은 이유가 비슷할까?

임진강 방어를 맡은 김명원은 임진강 건너 왜군이 철수하는 폼을 잡자, 지난 번 패배를 만회해 볼 요량으로 부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알토란같이 모은 1만의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왜군을 쫒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왜군의 유인작전으로, 조선군은 왜군의 매복에 걸려 괴멸해 버리고, 자신은 또 다시 평양으로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에도 조정의 비호를 받은 김명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선조는 도대체 무슨생각을 하고 사는지 ㅉㅉ

한편, 왜군의 진격로에서 벗어나 있던 전라도, 충청도와 경상도 일부의 지휘관들은 이곳의 남자라는 남자는 사실상 모두 모았다고 할 수 있는 5만의 병력을 집결시킨 후 근왕의 기치를 내걸고 북상했고, 이 소식을 들은 선조는 이 병력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5만의 대 병력은 용인에서 와키자까 야스하루가 선봉대 1천 6백을 이끌고 급습하자 무너져 버렸고, 가까스로 수습해 진을 차리고 밥을 지어 먹던 이틑날 아침, 다시 기습해 온 적에 허둥대다가 거짓말같이 와해되어 버리니, 선조의 마지막 희망은 이렇게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조는 격렬하게 앞을 가로막는 백성들 목을 여럿 친후 겨우 길을 내어 평양을 떠나 임시 거소를 정한 후, 이제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를 논의 하였으나,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선조는 "함경도건 평안도건 나라 안에 있으면 외적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으니 중국 요동으로 가려한다. 죽어도 중국 땅에서 죽겠다. 광해에게 국내를 맡긴다면 광해가 능히 대임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명나라로의 "귀부"를 주장하였습니다.

"귀부"는 나라를 버리고 명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선조의 이런 뜻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국 광해군은 선조와 헤어져 분조를 이끌기로 했고, 선조는 의주로 이동해 여차하면 중국 요동땅으로 튈 준비를 마쳤습니다.

폼생폼사도 모르는 선조
소갈따악지 밴댕이 선조
인재버리는 무식이 선조
선위운운해 연장한 선조
왕이라 칭하기에 한없이 부끄럽지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