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62)> 선조 10 - 위대한 성웅 이순신!!!
100년에 걸친 실전으로 단련된 수십만의 최정예 군대, 최신식 조총으로 무장, 거기에 죽거나 이기거나만을 외치는 사무라이 정신, 이러한 전력을 소유한 히데요시가 명나라 정벌을 꿈꾸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히데요시의 계획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1. 파죽지세로 밀어붙여 일단 조선 전역을 장악한다.
2 .진격한 군대가 고립되지 않게 안전하게 군수물자와 응원군을 보내준다.
3. 어떻게? 서해를 통해 곧장 한양으로, 평양으로, 이른바 수륙병진전략을 사용한다.
4. 이리되면 조선은 항복할 것이고, 그런 다음 조선군을 보조군대, 즉 총알받이로 삼고,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군수기지로 하여 명을 친다.
이와 같은 전략은 조선 수군을 아예 유령 취급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실제로 조선이나 일본이나 모두 수군은 당연히 일본이 강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육군이 평양까지 진격했다는 보고를 받고, 곧바로 선조를 쳐 죽인 후 명나라를 칠 것인가, 아니면 명나라와 협상을 하여 조선의 일부만 먹을 것인가라는 즐겁고도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전혀 예측 못했던 하이 킥이 솟아올라 히데요시의 턱을 강타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니, 이는 바로 이순신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인종 원년인 1545년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철들 무렵에는 외가가 있는 아산으로 이사해 살았습니다.
32세에 무과에 급제한 이순신은 10여 년 간 승진과 파직을 거듭하며 제자리걸음을 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이순신이 승진을 위한 노력, 즉 "빽"쓰는 일을 혐오하고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은 조정의 높은 대신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부당거래로 보고 거절하였는데, 이로 인해 이순신은 독불장군이라는 평을 받아 배척되기도 했지만, 반면에 소수 나마 이순신의 됨됨이에 탄복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이러한 소수의 긍정적 평가로 인해 왜란 발발 바로 전 해인 1591년 47세의 나이에 전라좌수사에 제수될 수 있었으니, 아직 조선이 망할 운명은 아니었나 봅니다.
이순신은 조정의 판단과는 달리 일본에 잡혀갔다 풀려나온 백성들의 증언, 상인들의 전언과 조선 내 왜인들의 동태 등을 근거로 왜군의 침략을 기정사실로 여겼습니다.
또한 독자적으로 왜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왜군의 전함은 빠르기는 하나 삼나무로 건조하여 견고하지 못하고, 조총으로 무장한데다 칼싸움에 능해 접근전에 강하나, 포는 별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순신은, 해전의 핵심은 '포격전'이고, 포격전은 대형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에 달려있으며, 여기에 물길에 밝은 이점을 살려 유리한 곳에서 싸움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아울러 전라좌수군이 무너진다면 서해를 이용한 바닷길과 곡창지대인 전라도 지역이 왜군에 넘어가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조선은 계속 왜군에 맞서 싸울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을 간파하였습니다.
이순신은 위와 같은 형세 판단을 전제로, 배를 건조하고 포와 화약을 힘써 마련하는 한편, 실전과 같은 훈련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장의 전함 거북선도 차츰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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