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63)> 선조 11 - 승전의 시작

이찬조 2021. 4. 13. 21:30

<조선왕조실록(63)> 선조 11 - 승전의 시작

왜군 침입이 이순신에게 알려진 것은 왜군 부산상륙 이틀 후인 4월 15일이었습니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왜적함대를 처음 대면하고는 그 규모와 위세에 눌려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을 친 후,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한편, 조정에 전라좌수군과 합세하여 싸운다면 이길 수 있다는 장계를 올렸습니다.

원균의 구원 요청에 이순신은 "각자 맡은 지역과 소임이 있으니. 함부로 쉽게 군사를 이동시킬 수 없다"며, 지원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이은 선조의 명령서의 내용은 "원균이 여러 포구에서 싸울 준비를 마쳤다고 하므로 전라좌수군과 경상우수군이 힘을 합쳐 맞선다면 능히 왜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이순신이 출정을 위해 경상우수군의 상황을 파악해보니 군사도 배도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어, 사실상 전라좌수군의 힘만으로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쨌든 1592년 5월 4일 이순신은 판옥선 24척을 필두로 여수 수영을 출발해 경상우수영 관할 포구에서 결진을 하니, 원균의 판옥선은 4척에 불과하였습니다.

5월 7일 점심쯤, 척후선이 적선 30척이 옥포 포구에 정박해 있고 왜군은 상륙하여 분탕질을 하고 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조선 수군은 소리 없이 포구로 접근을 하였고, 이를 발견한 왜군은 황급히 배로 돌아와 다가오는 조선 수군을 향해 조총을 난사하였습니다.

조선 수군은 넓게 진을 이루어 포위해 들어가다가 일제히 벼락같은 포격을 가하였습니다.

그동안 일본 수군의 기본적 전투 양식은 빠른 배를 이용해 적선에 접근하여 배에 올라탄 다음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칼싸움에 도가 텄고 조총까지 갖추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왜군은 조선 수군의 예기치 못한 포격에 혼비백산했고, 조선함대가 접근하자 백병전을 펼치고자 했으나, 조선 수군은 그동안 훈련한 그대로 더 두껍고 튼튼한 판옥선을 이용해 충돌 공격을 감행하여 왜선을 좌초시키는 한편 일본 배보다 높은 판옥선 갑판 위에서 화살공격을 퍼부으니, 왜군은 도저히 대적할 방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날 전투로 왜선 26척이 좌초되었고 수많은 왜군이 수장되었으나, 조선군이 입은 피해는 겨우 부상 1명에 불과했으니 실로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옥포해전)

승리에 자신감을 얻은 수군은 이어 합포에서 5척, 그 다음날에는 적진포에서 11척의 왜선을 깨트린 뒤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개선하였습니다.

히데요시는 육군보다 더 강하다고 자부하던 해군이 그들 입장에서는 “듣보잡”인 이순신에게 완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대노하여 장검으로 평소 가장 아끼던 분재를 난도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서막에 불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