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64)> 선조 12- 비장의 전함 거북선(龜船)

이찬조 2021. 4. 13. 21:30

<조선왕조실록(64)> 선조 12
- 비장의 전함 거북선(龜船)

이순신은 장졸들의 전공을 치하한 뒤 곧바로 전함을 수리하고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는 등 다음 전투를 위한 준비에 몰두하였습니다.

조선 수군과 백성들은 그동안 "이런다고 과연 우리가 왜군을 이길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옥포해전의 승리로 이순신을 믿고 따른다면 능히 왜군을 물리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5월 29일, 이순신 함대는 2차 출동에 나섰는데, 이 때는 비장의 전함 거북선이 함께 했습니다.

“거북선이 먼저 돌진하고 판옥선이 뒤따라 진격하여 연이어 지자·현자 총통을 쏘고, 포환과 화살과 돌을 빗발치듯 우박 퍼붓듯 하면 적의 사기가 쉽게 꺾이어 물에 빠져 죽기에 바쁘니 이것이 해전의 쉬운 점입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개전 이듬해인 1593년 조정에 보낸 보고서의 한 구절입니다.

이순신이 이 장계에서 자신 있게 언급했듯이 거북선(龜船)과 판옥선은 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승리를 뒷받침한 가장 강력한 물적 토대 중 하나였습니다.

왜군들이 조선의 배로 뛰어들어 단병접전을 시도하지 못하게 막고, 조선의 장기인 활쏘기와 화약무기 사격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본 갑판 위에 갑판을 한 층 더 높인 군함이 판옥선이고, 갑판 위에 아예 덮개를 씌운 군함이 거북선입니다.

조선 수군은 어느 정도 적선과 떨어진 거리에서 화약무기로 승부는 가르는 것을 선호했지만,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대포를 쏘아 적함을 맞추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해상에서 사거리가 100미터가 넘는 경우 명중 정확도에 한계가 있었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쓰인 배가 거북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북선은 판옥선보다 강한 방호력을 바탕으로 적선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해 코앞에서 명중탄을 날려 보낼 능력이 있었고, 최선봉에서 인파이터처럼 돌격함으로써 후방의 판옥선이 적선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됐으며, 적의 전투대형을 직접적으로 교란하는데도 그만이었습니다. 거북선은 판옥선의 가장 훌륭한 전투 파트너였던 셈이었습니다.
거북선이 이처럼 초근거리로 접근해서 전투를 했다는 목격담은 일본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일본 측 기록인 [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는 1592년 7월10일 벌어진 안골포해전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큰 배 중에 3척은 메꾸라 부네(盲船:장님배)인데, 석화시·봉화시·안고식 화살촉 등을 쏘며 오후 6시까지 번갈아 접근해 공격을 걸어와 망루로부터 복도, 방패까지 모조리 격파되고 말았다.

이러한 거북선은 태종실록에도 그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런 것과 괸련해 거북선의 발명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두루 두루 종합해 보건대, 거북선은 이순신이 휘하의 사람들과 함께 조선 태종 때 존재했다던 거북선을 모티브로 실제 전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실전적으로 건조한 창조적 함선인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거북선은 나중에 건조된 것까지 도합 5척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운이 풍전등화 상황에서 백성 모두에게 이길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한 이순신 장군의 승전보는 당시 백성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