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65)> 선조 13
- 이순신, 바다를 장악하다!
이순신이 2차 출동에 나선 5월 29일, 이 때에는 전라 우수영 이억기 부대, 원균 부대와 합류해 판옥선만 50척이 넘는데다 거북선이 앞을 이끌었습니다.
조선 수군은 사천포에서 왜선 12척을 모두 격파하고, 이튿날 당포에서 20척의 왜선을 깨트렸습니다.
거북선을 선봉에 세운 조선 수군은 이어 당항포에서 26척, 율포에서 3척을 격파한 뒤 각 군영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원균은 싸움보다는 왜군의 수급 확보에 혈안이 되었다 합니다.(저기도 있다~ 건져 올려~~) 원균은 그렇게 확보한 수급과 함께 장계를 올려 선조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한편, 거듭된 수군의 참패에 경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600명으로 5만의 조선 관군을 깨트린 용인전투의 주인공 와키자까 야스하루를 해선에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와키자까의 주특기는 사실 해전이었습니다. 와키자까는 “이순신? 누군지 모르지만 그대의 무운도 이제는 끝이라오”라고 호언을 하며, 합동작전을 펼치라는 히데요시의 명도 무시하고 이순신과의 일전을 서둘렀습니다.
일본 최고의 장수라는 자부심이 너무 강했던지, 와키자까는 왜군의 연전연패에도 상대를 인정할 줄 모른 채 전공에만 눈이 멀어 서둘러 70여척의 전함을 이끌고 견내량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겨 놓고 싸우는 장수 이순신은 왜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포위한 후 몰살시켜버리겠다는 웅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순신은 7월 4일, 이억기, 원균의 수군과 결진하여 한산도 앞바다에 진을 친후, 어영담의 5척 전함을 동원해 왜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한산도 앞바다로 들어 온 와키자까의 왜군은 이순신이 미리 구상해 놓은 학익진에 걸려들었고, 조선 수군은 특유의 함포 사격과 뒤이은 강력한 박치기, 그리고 정밀한 마무리 공격으로 59척의 왜선을 격침시켰으며, 일본 최고의 장수라는 와키자까는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을 치기에 급급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한산대첩으로서,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더불어 3대 대첩으로 불리웁니다.
조선 수군은 50여일 뒤 다시 출병하여 부산포를 공격해 적선 100척을 깨트리는 전과를 올리니, 이로써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조선의 바다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히데요시는 한산대첩으로 인해 해전을 포기하는 등 전쟁의 구도 자체를 변경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불패의 이순신은 조선 백성들에게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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