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사대부의 나라!
의무는 적고(병역? 그런 거 난 몰라), 권리는 무한 (벼슬하여 백성 위에 군림하고, 땅 늘리고~)했습니다.
그 많은 것을 누리던 사대부들은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문만 듣고는 대거 도망했고, 방어의 책임을 맡은 이들도 대부분 왜적의 모습만 보고는 도망을 쳤습니다.
이러한 때에 사대부의 명예를 지킨 이들이 있었으니, 이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격렬하게 싸운 의병장 입니다.
최초의 의병장 곽재우는 왜적이 부산에 상륙하고 열흘이 지난 뒤 경상도 의령에서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한 열혈남아입니다.
의령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왜적 보급로 상의 중요 지점이었는데, 곽재우는 게릴라전으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곽재우는 적의 보급 수송선단이 지나가는 강바닥에 말뚝을 박아두었다가 적선이 여기에 걸려 전복되는 사이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왜적의 수송선단을 괴멸시키는 등 임진왜란의 방향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곽재우는 이벤트 능력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는 붉은 비단옷과 백마를 타고 스스로를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 : 붉은 옷을 입은 하늘이 내린 장군)’이라 부르면서 신출귀몰하게 게릴라전을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홍의장군이라는 명칭이 유명해지자 여럿에게 자신과 같은 차림을 하게하고는 여기저기에 나타나도록 하여 왜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거듭된 승리로 어느덧 홍의장군 곽재우는 백성들에게는 희망의 이름으로, 적들에게는 공포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임진왜란 때 활약이 컸던 의병장으로는 곽재우 외에도 고경명, 조헌, 김천일, 김면, 정인홍, 정문부 등 상당수가 있었으며, 1593년(선조 26) 정월에 명나라 진영에 통보한 전국의 의병 총수는 관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만260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의병이 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무질서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이정암은 황해도에서 의병을 일으키면서 8개 항목의 군율을 스스로 정했는데, 그 내용은 “적진에 임하여 패하여 물러가는 자는 참수한다(臨賊退敗者斬), 민간에 폐를 끼치는 자는 참수한다(民間作幣者) 斬)”는 등 엄격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의병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능한 관군 대신 지역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절대적 열세의 전력으로 목숨을 바쳐 왜적과 싸웠으며, 임진왜란의 방향을 틀 정도로 큰 공을 세운 경우가 많았으나, 대부분 마지막에는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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