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74)> 선조 22 - 명량해전(1)
백의종군의 길을 가던 이순신에게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노모를 걱정하는 마음을 난중일기에 가득 채울 만큼 효자인 이순신.
그는 1597년 4월 19일자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일찍 집을 나서야겠기에 어머니의 빈소 앞에서 울며 하직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어서 죽는 것만 못하다. 그리고 곧 그동안 애써 키운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수군이 모두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며칠 뒤 이순신은 선조로부터 3도수군 통제사로 복귀하라는 교서를 받고 곧바로 남해안으로 떠났습니다. 에휴~ 우리 이순신 장군님은 사람도 좋지~내같으면 마~확~그냥~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임명하며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합니다.
- 출병을 독촉해 이런 일을 했으니, 이는 사람이 아니고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엥? 우리 장군님이 오죽하면~이런 썩을~)
이순신은 보름 동안 연안 고을들을 샅샅이 훑어 흩어진 장수와 병사들을 불러 모았고, 군량과 무기들도 마련했으며, 병사들도 백성들도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장군님과 함께라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칠천량 전투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이 휘하의 함대를 이끌고 진영을 이탈함으로써 판옥선 열두 척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상유십이~)
조정은 이순신을 다시 3도 수군통제사로 삼기는 했지만, 수군이 무너진 마당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겨, 선조는 이순신에게 수군을 파하고 육군에 복속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지랄도 가지가지합니다. 이런게 임금이라고~)
이에 대한 이순신의 답변이 유명합니다.
- 임진년으로부터 5,6년 동안 적이 감히 충청, 전라도를 바로 찌르지 못하고, 퇴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우리 수군이 그 길목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가벼이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미천한 신하 이순신은 죽지 않았나이다. 그 유명한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입니다.
이순신은 왜적이 함대를 총동원해 남해를 접수하려 들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단 12척으로 얼마가 될 지 모를 엄청난 규모의 일본군을 격퇴할 특단의 방안을 강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순신은 벽파진에 진을 치고 왜군 함대를 불러들였습니다. 과거 한산도에 위풍당당하게 진영을 구축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초라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왜군은 열두 척에 불과한 조선 수군을 짓이겨 버림으로써 지난날의 수모를 한 번에 갚고자 했고, 이를 위해 300척의 배를 동원하였습니다.
왜군이 어란진에 도착하자 이순신은 다음과 같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 병법에 이르기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이길 것이요, 살려고 한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막아 지켜도 능히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울둘목에서 적을 기다려 모조리 수장시키고야 말겠다.
명량해전의 서막이 오르고 있습니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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