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88)> 인조 6 - 비운의 소현세자(1)

이찬조 2021. 5. 4. 05:42

<조선왕조실록(88)> 인조 6 - 비운의 소현세자(1)

조선왕조에서 비운의 왕세자로 회자되는 인물인 소현세자! 사도세자와 함께 왕세자였음에도 왕이 되지 못하고 34세의 나이에 요절한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소현세자와 관련한 가장 큰 의혹은 바로 그의 죽음에 있습니다. 그가 독살되었다는 주장은 아직도 현재진행입니다.

소현세자는 1612년(광해군 4) 1월 4일 인조의 장남으로 태어나, 인조반정으로 부친이 왕위에 오르자 14세의 나이로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병자호란 후 1637년 2월 8일 아우인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습니다.

인질로 잡혀온 항복한 나라의 세자, 어찌 보면 참 우스운 처지입니다. 그러나 소현세자는 고요한 가운데 언제나 당당했으며,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히기를 쉬지 않았고, 조선 백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소현세자에게 조선 외교 문제를 따지고 들자, 소현세자는 다음과 같이 답하기도 하였습니다.
- 내 비록 이역 땅에 와있지만 일국의 세자요. 장군이 어찌 이토록 감히 협박하는 것이요. 죽고 사는 일이야 하늘에 달려 있는 법 내 두렵지 않으니 예를 갖추시오.

심양의 왕들과 장수들은 점차 소현세자의 품격에 반해 시간이 흐를수록 세자를 좋아하게 되었고, 특히 용골대는 소현세자의 인품과 자질에 진심으로 반해 소현세자를 왕 모시듯 하였습니다.

소현세자는 독일 출신의 신부인 아담 샬과 친교를 맺었는데, 그는 벽안의 외국인이 흥미롭기도 하고 그를 통해 알게 된 천외천, 즉 하늘 밖의 하늘이라 할 만한 서양의 사상과 문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담 샬도 소현세자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 세자가 희망하는 대로 서양의 천문학 등을 알려주고 각종 천주교 서적과 관측기구를 선물로 주었으며, 소현세자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중원을 차지한 청의 힘을 지켜 본 20대 후반의 소현세자는 청국이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선진 문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조선도 서양과 청국의 새로운 문물을 배워야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청국에서 국제 외교에 능숙했고 서양 문물에 눈을 뜨고 글로벌 패러다임으로 전환한 최초의 조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의 외교정책에 반대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인조와 서인세력은 소현세자의 이러한 성장과 태도에 대해 의심과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어느덧 인조에게 소현세자 내외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비춰지고 있었습니다다.

소현세자를 반대하는 세력은 소현세자가 귀국하기도 전에 세자가 왕이 되고자 청나라를 부추겨 부친인 인조를 심양에 오게 만드는 공작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내었고, 인조는 청이 왕위를 세자에게 양위하라고 할까 봐 불안해했습니다.

선조가 이순신과 광해에게 느꼈던 것과 똑 같은 열등감과 두려움을 인조가 자기 아들인 세자에게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권력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아들에게도 이런맘을 갖을수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