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112)> 경종 영조 9 - 사도세자(2)
어린 시절 사도세자의 영민함을 나타내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세자가 천자문을 읽다가 “사치할 치(侈)”자를 보고는 입고 있던 자줏빛 비단으로 만든 구슬 꾸미개로 장식한 모자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사치한 것”이라고 하고는 즉시 벗어버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린 시절의 영특함은 부왕과 왕실의 기대를 넉넉히 충족시킬 만했습니다.
세자는 8세 때 홍봉한의 동갑내기 딸과 혼인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유명한 혜경궁 홍씨입니다.
홍봉한은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되기 전까지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가, 딸의 간택을 계기로 도승지에 발탁된 뒤 영의정에까지 오르면서 영조 중, 후반 노론의 대표적 대신으로 활동했습니다.
세자는 홍씨와 사이에 둘째 아들을 낳으니(첫아들은 2년 만에 세상을 떠남), 이 사람이 조선시대의 대표적 현군으로 평가받는 정조입니다.
뭘 해도 마냥 귀여운 어린 시절은 가고 세자에게도 본격적인 세자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략 10세 정도 되던 이때부터 세자를 향한 영조의 각별한 사랑이 식기 시작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체격도 크고 힘도 셌던 세자는 공부보다 무예를 더 좋아했고, 그나마 공부도 영조가 강조하는 경전보다는 잡학 쪽에 관심이 많았으며, 영조는 이런 세자의 모습에 조금씩 실망을 하면서 세자를 질책하는 경우가 많아져갔습니다.
- 당론으로 뭉친 노회한 신하들을 조절하고 다스리려면 학문과 지혜가 필요하거늘 공부는 좋아하지 않고 기가 뻗치니 참으로 걱정이다.
학문에 열중하지 않는 세자를 마뜩치 않아 하던 영조는 어린 세자에게 엄격한 지침을 하달했습니다.
- 내가 동궁으로 있을 때는 거의 휴식할 겨를이 없었고, 연강을 거른 적이 없었으며, 술도 좋아하지 않았다.
- 오늘 이후에는 매월 초 하루에 쓰기 시작해 그믐까지, 어느 날에는 소대하고 어느 날에는 차대했으며, 어느 날에는 서연하고 어느 날에는 공사를 보았으며, 어느 날에는 무슨 책 무슨 편을 읽었고 어느 날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기록해 내가 볼 수 있도록 준비하라.
그러나 영조 자신이 실천했던 이런 엄격한 규율은 호방한 무인적 기질의 세자에게는 무거운 규제가 되었습니다.
영조는 세자를 자주 꾸짖었고, 세자는 부왕을 꺼리고 멀리하게 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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