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14)> 경종 영조 11 - 사도세자(4)

이찬조 2021. 5. 8. 20:08

<조선왕조실록(114)> 경종 영조 11 - 사도세자(4)

대리청정 이후 영조가 세자를 질책하는 일은 매우 잦았고 그 내용도 혹독하고 모질었으며, 세자가 관(冠)을 벗고 뜰에 내려가 석고대죄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땅에 짓찧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가장 극적인 것은 영조가 세자의 반성문을 받아보고 세자를 불러 몇 가지를 물어본 후 상복을 입고 걸어서 숭화문 밖까지 나와 맨땅에 엎드려 곡을 한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세자도 상복을 입고 뒤에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하들이 엎드려 울면서 “전하께서 어찌 이런 거조를 하십니까?”고 묻자 영조는 “무엇을 뉘우치느냐 물었는데, 동궁은 후회한다고만 말하면서 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남의 이목을 가리는 데 불과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 영조가 다시 선위 전교를 내리자 홍봉한은 세자를 두둔하며, “전하께서 평소에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동궁이 늘 두려워하고 위축되어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날 세자는 물러나와 뜰로 내려가다가 기절해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청심환을 먹고 한참 뒤에야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자는 부왕을 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부왕이 찾는다하면 불안감이 극도로 올라 정상인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위 사건이 벌어진 때 세자의 나이 22세, 이즈음 세자에게 부왕을 극도로 싫어하는 정신적 질환에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세자가 죽게 되는 임오화변이 일어나기 7년 전인 1755년(영조 31년) 약방 도제조는 “동궁이 요즘 가슴이 막히고 뛰는 증세가 있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렇게 된다”고 아뢰었다 하고, 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사망한 원인을 의대증(衣帶症)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의대증은 옷 입기를 싫어하는 것인데, 세자가 영조를 만나기 싫어 옷을 입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임오화변 당일의 기록에서도 “정축년(1757) 무인년(1758) 뒤부터 병의 증세가 더욱 심해져 발작할 때는 궁비와 환시를 죽였고, 죽인 뒤에는 후회하곤 했으며, 임금이 그때마다 엄한 하교로 절실하게 책망하니, 세자는 두려워 질병이 더하게 되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무렵 영조와 세자의 관계는 같은 궁궐 안에서 거주했어도 매우 멀었습니다. 세자는 궁궐에 있으면서도 길게는 1년 동안이나 진현(進見: 임금께 나아가 뵘)하지 않았고, 그런데도 영조는 그런 세자를 특별히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자를 보고 싶지 아니하는 영조에게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니, 이는 바로 세손이었습니다.

세손은 세자와 달리 영조가 좋아하는 식으로 공부하는 것을 즐겨했고, 영조는 각종 행사에 세자 대신 그러한 세손을 대동하는 경우가 매우 많아졌으며, 급기야 대놓고 세손을 띄우기까지 하였습니다.

- 지금의 세손을 보니 진실로 성취한 효과가 있도다. 30년 명맥이 오로지 세손에게 달려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