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24)> 정조 5 - 정조 암살 기도 사건

이찬조 2021. 5. 12. 20:31

<조선왕조실록(124)> 정조 5 - 정조 암살 기도 사건

영화 ‘역린’의 소재가 되었던 정조 암살 사건 비슷한 일이 있기는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뭔가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정말 궁궐에서 이런 식의 일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실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먼저 보면 이렇습니다.

- 1777년(정조 1년) 7월 28일, 대궐 안에 도둑이 들었다.
- 임금께서는 언제나처럼 조정 일이 끝난 뒤 존현각에 나아가 촛불을 켜고서 책을 펼쳐 놓고 읽으셨는데, 곁에 내시 한 사람이 있었으나, 숙직하는 군사들을 살펴보러 가 좌우가 텅 비어 아무도 없었다.
- 이때 갑자기 행랑채 위를 따라 은밀하게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 임금이 한참 동안 고요히 들어보며 도둑이 무얼 하려는지 살피시더니, 친히 환관과 액정서 하인들을 불러 모아 횃불을 들고 중류 위를 수색하도록 하였다.
- 지붕 위에는 기와, 자갈, 모래와 흙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도둑질하려 했음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 8월 11일, 이날 밤에 경추문 수포군의 군사 김춘득, 김세징 등이 몸을 포개고 드러누웠는데, 어떤 자가 수포군을 부르다 대답을 하지 않자 (수포군이 모두 잠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곧장 경추문 북쪽 담장을 몰래 넘어가려고 했고, 이에 17세의 김춘득 등이 옆에 있던 수포군을 깨워 합이 넷이 추격해 마침내 그 자객을 잡았다.

조사 결과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앞서 홍국영을 제거하려했다는 이유로 홍인한 일파가 대거 숙청될 때 함께 몰락한 홍계희 가문의 아들 홍술해의 처 효임과 그 아들 홍상범이 범인으로서, 이들은 가문이 몰락한 데 대한 복수로 이 일을 벌였습니다.

홍상범은 왕의 호위무사 강용휘와 전흥문이라는 사람을 포섭하였고, 정조를 죽여 복수를 한 후 종친 중에 삼왕손을 추대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관련자 스물 몇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또 그 정도가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곧 홍상범 등이 왕위에 추대하려 했다는 삼왕손, 즉 정조의 서제 3명 중 막내인 이찬을 사사하라는 정청을 거듭 하였고, 정조는 끝내 이찬을 사사하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정조 암살 기도 사건은 왕조 시대에 왕을 시해하기 위한 자객이 궁궐에 직접 침입해 왕과 사실상 대면했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 내용이 실록에 이래저래 기술되어 있는데다 스무 명 이상이 죽어 나간 것을 볼 때 전혀 없던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그 경위와 과정이 지나치게 허름하고, 당연히 뒤따라야 할 경호책임자에 대한 엄한 처벌 등에 관한 사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연 실제 있었던 사건인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던 것인지, 불과 230년 전 일인데,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