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38)> 헌종 철종 4- 삼정(三政)의 문란

이찬조 2021. 5. 30. 21:46

<조선왕조실록(138)> 헌종 철종 4

- 삼정(三政)의 문란

 

19세기 조선의 농민이 부담한 세금은 주로 농토에 부과된 전세와 군포, 양곡 대여 정책인 환곡(還穀)이었는데, 이를 삼정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조선 사회는 지배 체제의 문란으로 세금 수취 체제가 심각할 정도로 문란해져 있었습니다. 세금의 항목과 액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관리들은 새로운 항목을 만들어 정해진 양의 몇 배 이상을 거두었는데, 특히 삼정과 관련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백성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전정은 잡다한 세금의 명목과 징수로 인하여 농민의 원성을 샀고, 군포는 군역의 부당한 부과 방법이 결국 행정적 횡포로 이어졌으며, 환곡은 정부 대여곡의 대여와 환수를 둘러싼 지방 관리들의 농간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 단면을 보여주는 정약용의 시입니다.

 

- 애절양(哀絶陽)

시아버지 죽어 상복 이미 입었고

갓난아기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건만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다.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려 해도

범 같은 문지기가 버티어 섰고

이정이 호통하며 단벌 소만 끌고 갔네

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더니

붉은 피 자리에 낭자하여라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은 죄로구나

 

중앙 관리들에게 돈을 써서 수령직을 산 이들은 어떻게든 본전을 찾아야 했습니다.

 

- 본전만 찾으셔야 되겠습니까요

 

수령의 수탈 이면에는 아전, 토호들에 의한 수탈이 있었으니, 아전, 토호들은 고을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대를 이어 아전을 맡아 고을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고, 수백 년에 걸쳐 공고한 지배구조를 형성해왔습니다.

 

- 수령은 바뀌어도 우리는 바뀌지 않지.

 

또한 과거가 문란해지고 중앙 사족들이 관직을 독점하면서 벼슬길이 막힌 지방의 사족들은 토호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서원, 향교를 끼고 오피니언 리더 행세를 하며 수령과 결탁해 농민을 수탈했고, 결국 농민들의 대부분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수령, 아전, 토호 삼위일체에 의한 가혹한 수탈은 백성을 더는 버틸 수 없는 임계점으로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